[광화문에서/허두영]국회의원의 막말을 측정하는 방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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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여인의 아름다움을 측정할 수 있을까? 키와 몸무게 그리고 가슴 허리 엉덩이의 둘레를 재는 방법은 좀 민망하고, 사진을 찍으면 미인의 얼굴 특징과 비교한 결과를 점수로 알려주는 스마트폰 앱은 아직 장난스럽다.

1970년대에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시각 생리학을 연구하던 윌리엄 러시턴 교수는 여인의 미모를 측정하는 단위로 헬렌(H)을 제안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전쟁을 촉발시킨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렌(Helen)의 이름을 딴 단위다. 러시턴 교수는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에 나오는 구절에서 미모의 단위를 착안했다. ‘이 얼굴이 전함 1000척을 띄우고, 저 높은 트로이의 성을 불타게 한 얼굴이란 말인가?’

배 1000척을 동원할 수 있는 미모가 1H다. 그녀 때문에 아버지, 오빠, 남편, 아들 등등 해서 건장한 남자 1000명을 전쟁터로 불러낼 수 있는 미모다. 1mH(밀리헬렌)은 배 1척을 동원할 수 있는 미모가 된다.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 1명이 만사 제쳐두고 싸우러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소박한 여성이라면 이 정도만 되어도 만족할 듯싶다. 음수(陰數)도 있다. ―1H은 배 1000척을 도망가게 만들 만큼 추한 모습이다.

측정하기로 작정한다면 측정하지 못할 것이 없다. 단위를 설정하고 방법만 타당하면 무엇이든 측정할 수 있다. 길이의 단위 피트는 영국 국왕 헨리 1세의 발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그는 도량형 표준을 제정하기 위해 그의 발을 1피트로 정했다. 1인치는 엄지손가락의 길이, 1야드는 코끝에서 손끝까지의 길이다. 1m는 원래 북극점에서 적도까지의 거리를 1000만 등분한 것이었지만, 1983년 국제도량형총회에서 빛이 진공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나아간 거리로 다시 정의됐다.

이처럼 단위는 정하기 나름이다. SF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기획한 더글러스 애덤스와 존 로이드는 ‘셰피(sheppey)’라는 단위를 고안했다. 양(sheep)은 가까이에서 보면 지저분하지만 어느 정도 떨어져 보면 순수해 보인다. 곧 양이 지저분하지 않게 보이는 거리가 1셰피다. 1워홀(warhol)은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15분간 지속되는 명성의 척도이며, 1수염초(beard second)는 수염이 1초 동안 자라는 길이의 단위다. 이처럼 장난스러운 단위를 만드는 것을 측정조롱학이라고 한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세계적인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비영리단체의 경영’이라는 저서에서 측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성인병도 각각 mmHg(혈압)와 mg/dL(혈당)의 단위로 측정할 수 있으니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막말도 개선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그들의 막말을 고치지 못한 것은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막말이 가장 심한 ‘김막말’(가명) 의원이 하루 동안 한 막말의 양을 ‘1김막말’이라는 단위로 정의하면 일정 회기 동안 어떤 의원이나 정당이 쏟아놓은 막말의 총량을 측정할 수 있다. 이를 분석하여 국회 윤리위원회에서 징계하거나 시민단체에서 경고한다면 국회의원의 막말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미모의 단위가 될 만큼 아름다운 헬렌처럼, 막말의 단위로 아름다운(?) 이름을 영원히 남길 국회의원이 누구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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