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명]대통령의 여름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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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박정희 대통령은 여름휴가차 경남 거제시 저도(猪島)를 찾았다. 그는 휴가를 떠나기 전 경호실에 “저도에 있는 목조 건물을 손질해 잠을 잘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목조 건물은 사라지고 번듯한 새 집이 지어져 있었다. 그는 박종규 경호실장을 불러 “수리하라는 집을 없애고 새로 지은 건 무슨 짓이냐”고 꾸짖었다. 곧바로 짐을 싸 청와대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참모들이 말리면서 사태는 수습됐다.

▷당장은 화를 냈지만 박 전 대통령도 저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해 저도는 대통령 별장으로 공식 지정됐다. ‘바다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해대(靑海臺)’는 이듬해 들어섰다. 43만4100m²(약 13만1500평)인 저도에는 대통령실, 건물 3동, 9홀짜리 골프장 등이 갖춰져 있다. 1954년부터 대통령의 휴양지로 이용된 이곳은 1993년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됐지만 해군이 관리하면서 이후 대통령들도 때때로 이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 중 노출 수위가 가장 높은(?) 비키니 수영복 차림의 사진도 저도 해변에서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7년 성심여고 1학년 때다. 박 대통령이 이달 29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4박 5일간 여름휴가를 가겠다고 한다. 다시 저도를 찾을지 주목된다. 그는 지인에게 “저도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경호상 휴가 장소를 공개할 수 없다”면서 “너무 상상력을 발휘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각국 정상의 여름휴가는 호사가들의 관심거리다. 기업인들이 5600만 원을 주고 빌린 미국 호화 별장에서 휴가를 보낸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하와이 해변에서 근육질 몸매를 뽐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한 달간 휴가를 즐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등…. 한국의 대통령은 어떤가. 별다른 일정 없이 국정 현안에 대한 구상을 가다듬었다는 말만 나올 뿐이다.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창조성도 휴식에서 나올 것이다. 휴가 때도 국정만 생각한다면 휴가 나온 군인이 노래방 가서 군가 부르는 격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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