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장택동]아버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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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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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 국제부 차장
장택동 국제부 차장
파키스탄의 15세 소녀 마랄라 유사프자이의 사연이 많은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의 접경인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 계곡 일대는 이슬람극단주의 무장 세력인 탈레반의 힘이 강한 곳이다. 탈레반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 정도로 여긴다. 교육을 비롯한 여성의 권리를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저항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스와트 계곡의 밍고라에서 자란 유사프자이는 11세 때 탈레반의 여학교 폐쇄 명령에 저항하는 글을 영국 BBC방송을 통해 공개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탈레반은 ‘죽이겠다’고 위협했지만 굴하지 않고 여성 교육권을 계속 주장하던 유사프자이는 지난해 10월 탈레반 대원들의 총격을 받았다. 총알이 머리를 관통했지만 오랜 치료 끝에 기적처럼 살아나 최근 영국에서 다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유사프자이의 용감한 행동은 큰 결실을 낳았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한 해외 명사들이 파키스탄 여성 교육권 보장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파키스탄에서는 지난해 12월 남녀 모든 아이들에게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법안이 발효됐다.

유사프자이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11세면 한국 초등학교 5학년에 불과한 나이다. 어떻게 그런 어린 나이에 여성의 권리에 대해 눈을 뜨고, 목숨을 건 행동에 나섰을까.

답은 아버지였다. 미국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은 “유사프자이의 가장 큰 후원자는 아버지였다”며 아버지 지아우딘에 대해 소개했다. 지아우딘은 밍고라에서 여학교를 운영하는 페미니스트다. 이 지역에서는 여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주에만 스와트 계곡에서 여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2명이 피살됐다. 지아우딘은 “나의 어머니와 아내, 누나는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내 딸 세대에서는 달라져야 한다”고 지인들에게 말해 왔다. 딸은 아버지의 신념을 이어받았고, 아버지는 딸의 행동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아이가 성장하고, 직업을 갖고, 성공적인 삶을 사는 데 아버지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요소가 있다고 한다. 학자들은 이를 ‘아버지 효과(father effect)’, ‘아버지 요소(father factor)’ 등으로 부른다. 사실 굳이 어려운 학술용어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점점 나의 말투와 행동과 성정(性情)을 닮아 가는 어린 아들을 보고 있으면 아버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슴으로 알 수 있다.

아이의 앞에는 하얀 도화지 같은 미래가 놓여 있다. 아이는 자라면서 도화지 위에 자기 삶의 그림을 그려 나갈 것이다. 아이가 아름다고 행복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것이 모든 아버지의 마음이겠지만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 아이 스스로 그림을 완성해 나갈 수밖에 없다. 다만 아이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 가고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버지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택동 국제부 차장 will71@donga.com
#아버지#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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