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림 일]김정일 1주기에 맞춘 ‘미사일 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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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 일 탈북작가
림 일 탈북작가
필자가 평양에 있을 때 참석했던 1994년 7월의 김일성 영결식과 서울에서 지켜본 작년 12월의 김정일 영결식은 달랐다. 20대의 후계자 김정은이 운구차를 호위한 것과 눈이 많이 내린 추운 겨울이라는 점이다.

평양의 금수산태양궁전을 나와서 시내를 돌아 시민들과 작별하는 김정일 운구차량이 평양역 근처에 지날 때 갑자기 하늘에서 함박눈이 쏟아졌다. 이때 행사에 강제 동원된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장군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차디찬 눈길로 보낼 수 없다”라며 자기의 파카를 벗어 도로에 깔았다. 이 사람을 북한식 표현으로 지칭하면,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심을 간직한 혁명전사이고 영웅이다.

그의 감동적(?)인 행동은 삽시간에 수천 수만 명의 군중을 감염시켰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행사용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애도음악 속에서 슬프게 울먹이던 주민들은 군중심리로 인해 너나 할 것 없이 옷을 벗어 눈이 쌓인 도로에 폈다. 심지어 일부 시민은 집으로 가서 담요와 이불을 내어다가 길에 덮어 놓으며 “장군님! 조금 쉬어 가십시오. 길이 차갑습니다”라면서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고 통치자와 작별하는 길에 쌓인 눈을 이불과 담요로 녹여 드린 국민이 동서고금에 있었을까? 영하의 날씨에 자신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옷을 벗어 도로를 덮다니? 자의든 타의든 세상에 그런 바보들이 또 있을까? 보통의 평양 시민들도 평일 한두 끼 따뜻한 밥 먹는 것이 소원이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이 하루 두 끼 멀건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실정이다. 악연인지 운명인지 지지리도 최고지도자 복이 없는 그들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배웅한 고맙고 순진한 인민을 보며 김정은은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권력의 대단함을 체험하면서 그 인민의 가난한 생활을 조금이라도 고민했을까?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김정은의 올해 동정은 군부대 방문과 예술문화 공연 관람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60여 년간 할아버지, 아버지가 너무도 많이 보여 준 것이다. 할아버지 100회 생일에 하도 보여 줄 것이 없어 자신의 육성을 공개했고, 그래도 인민이 식상해하자 미인 부인을 공개했다.

비록 연출이라도 김정은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으면 좋겠다. 시장을 찾아 음식찌꺼기를 주워 먹는 고아들을 안아 주고 텅 빈 노동자 농민의 밥솥도 열어 보았으면…. 농촌을 찾아 벼를 심어 보고 주택건설장에서 삽질도 해 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12일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강행한 미사일 발사도 결국 김정일 1주기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미사일 개발에 들어간 돈이면 전체 평양시민의 3년 치 식량을 구입할 수 있다. 발사에 쓴 연료의 양은 너무 추워서 집안에서도 옷과 신발을 벗지 못하는 많은 평양시민이 올겨울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양이다.

“김정일의 유훈대로 자체의 힘과 기술로 제작한 실용위성을 쏘아 올렸다”라고 변명하는 북한 정권에 묻는다.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어려운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은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유훈이 아닌가? 장군님의 인민은 당과 국가의 간부들뿐인가?

굶으면서도 아무런 반항을 못하는 바보 같은 인민이 벌어 주는 귀중한 외화로 미사일을 발사하며 체제를 유지하는 김정은 정권은 역사에 죄를 짓고 있다. 인민이 있어야 수령도 있고 당과 국가도 있다. 허구적인 ‘강성국가 건설’을 외치며 청맹과니 인민의 신경을 딴 곳으로 돌리려는 꼼수도 이제는 그만 쓰라.

림 일 탈북작가
#김정일#김정은#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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