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명진]사교육에 의존하는 예술교육의 악순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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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박명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시중에 나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탈리아 유학 출신 음악가들은 피자나 스파게티 가게, 미국 유학 출신은 커피숍, 독일 유학 출신은 휴대전화 대리점을 한다는 이야기다. 팔자 좋은 사람들의 한가한 조크가 아니다. 외국 유학까지 한 고학력 전문 예술인들조차도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핵심이다.

고학력 예술가, 일자리 없어 방황

이탈리아나 독일의 경우 국립음악원에 입학하는 외국인 중에는 한국 학생이 가장 많고 뉴욕의 음악, 미술 관련 학교가 한국 학생 덕분에 호황이라고 한다.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콩쿠르도 한국 학생끼리 경쟁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이쯤 되면 해외 유수 기관에서 수학해 국제적 인증을 받은 전문예술가 수는 한국이 최고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다수의 고학력 예술가가 안정적인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고 있다. 문화관광연구원의 한 통계에 따르면 음악 분야 정규직은 교육직과 국공립 오케스트라 단원 정도다. 이 중 교육직은 전 연령대를 통틀어 교수 13%, 정교사 4.5% 정도다. 강사도 16.5%를 차지하는데 그나마 하늘의 별 따기다. 최근 모 음대에서 계약직 강사를 8명 공모했는데 쟁쟁한 실력을 갖춘 후보자 130명이 몰려 화제가 됐다. 정규직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개인 레슨이나 전공과 상관없는 부업을 두세 가지 하면서 생계를 꾸린다.

예술 분야는 사교육 의존도가 다른 어느 분야보다 높다. 예술고에 진학 중인 학생 1만6000여 명을 제외한 10만 명이 훨씬 넘는 대학의 예술 관련 학과(정원 3만4000여 명) 입시준비생들은 학원이나 개인 레슨 같은 사교육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예술교육은 참고서나 문제집도 없고 인터넷 강의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교육에 의존해 예술가가 되면 다시 개인 레슨이나 학원 등 사교육 시장의 불안정한 일자리에 의존해 살아가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이지 않는다.

유럽은 대개 공공기관이 예술교육을 맡고 있다. 특히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의 경우는 지역의 시, 구 단위의 국공립 음악원과 아카데미가 많아 실기교육을 담당한다. 10여 년간 음악교육 비용이 사교육 없이 연간 5만∼50만 원 정도여서 대학 졸업 때까지 600만∼700만 원 정도로 가능해 서민에게도 금전적인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우리나라는 학자금만 계산해도 대학 졸업 때까지 1억 원이 넘어 유럽의 15배 정도가 드는 셈이다. 서민층 지원자들은 특별히 뛰어난 재능을 보여 독지가나 지자체의 도움을 받기 전에는 진출이 원천 봉쇄될 수밖에 없다.

지자체 문화원 적극 활용해 볼 만

몇 년 전부터 합리적인 비용으로 양질의 예술 실기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공인된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시청이나 구청 단위에서 방과후 전문적인 실기교육을 전담할 시립·구립 예술원을 만들자는 것이다. 음악 미술 무용 같은 순수 예술의 경우 설비투자 비용보다는 교육공간 확보가 절실하다. 시, 군, 구 단위에서 이미 많은 비용을 투자해 설치한 400개가 넘는 문화원이나 문예회관을 활용하면 된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문화의집도 전국에 200개가 넘는다. 대부분의 문화시설이 성인들의 취미나 교양강좌에 제공되고 청소년 시설도 동아리 모임이나 음악·영화감상 등에 주로 활용되고 있으니 오히려 문예회관의 설립 목적에 충실한 활용 방안일 수도 있다.

굳이 종합예술원이 아니라 지자체별로 특정 전공 분야를 선택하고 수요에 맞추어 규모를 정해도 될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유능한 교수진의 확보인데 국가적으로 공인된 안정적인 교육직을 양산하는 셈이니 고학력 전문예술인들의 실업률이 높은 요즘에 실행을 검토해 볼 여지가 크다고 생각된다. 이미 상당한 규모의 수요와 공급이 존재하기 때문에 시스템의 도입만으로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지자체 문화시설의 실기교육에 국가의 인증 체제가 뒷받침되면 대학 예술교육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해본다. 요즘 대학생 중에는 자신의 전공 분야와 상관없이 예술 분야를 부전공으로 택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체능 전공이 있는 학교들조차 전공 학생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기도 어려운 사정이라 비전공자들을 위한 문턱은 높고도 좁다. 공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전공자들이 국가의 인증이 주어지는 실기교육을 저비용으로 받을 수 있다면 창의적 인재를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술과 타 전공 간 융합 및 교류를 원활하게 하는 밑거름이 돼 우리 성장동력의 하나인 콘텐츠산업의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안정된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고학력 예술가들과 척박한 예술교육 현장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정책 묘안이 심도 있게 논의되기를 바란다.

박명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mjinpark@snu.ac.kr
#사교육#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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