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 결국 대통령 눈치 봤다는 말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과 관련해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 출입기자들에게 한 말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최 지검장은 그제 “형식적으로는 배임(背任)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면 김○○(청와대 경호처의 대지 매입 실무자)을 기소해야 하는데, 기소하면 배임에 따른 이익 귀속자가 대통령 일가가 된다. 이걸 그렇게 하기가…”라고 말했다. “대통령 일가를 배임의 귀속자로 규정하는 게 부담스러워 기소를 안 한 것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엔 “그렇지”라고 답했다. 검찰이 대통령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 수사를 하고 사건 관련자 7명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청와대 경호처는 내곡동 사저와 경호동 터 9필지를 매입하면서 3필지를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와 공동 지분으로 했다. 시형 씨는 이 땅을 싸게, 청와대는 비싸게 사들이면서 배임 논란이 빚어졌다. 나랏돈으로 대통령 아들의 땅값 일부를 치러줬다는 의심이 들 만한 일처리였다. 청와대는 경호동이 들어설 땅에 그린벨트가 포함돼 있어 공시지가가 낮았기 때문에 향후 지가 상승 가능성을 고려해 매입 가격을 높이 쳐줬다고 해명했다. 시형 씨와 청와대의 매입가격이 다른 것은 필지별 가격을 정확하게 몰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검찰은 최 지검장의 발언에 대해 “매입을 담당한 사람과 이익을 얻게 되는 사람이 다르고, 여러 면에서 배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얘기”라고 부연했다. 최 지검장도 “대통령 일가가 부담스러웠다는 말은 실무자도 기소를 못하는데 대통령 가족을 어떻게 기소할 수 있겠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은 “총체적 면죄부 수사였음이 확인됐다”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이 우여곡절 끝에 수용한 내곡동 사건 특별검사에게 임명장을 주기 전날 검찰의 수사 책임자가 야당에 공세의 빌미를 준 셈이다.

검찰은 시형 씨를 단 한 차례 서면조사하고 무혐의 처분해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수사 8개월 만에 발표한 내용은 청와대 해명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검찰이 권력형 의혹 사건을 제 힘으로 해결하지 못해 결국 특검으로 갔던 역대 정권의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광범 특검은 청와대나 어떤 정파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민주당의 추천을 받은 특검이 정파적 이해에 얽매인다면 이 또한 비판의 표적이 될 것이다.
#검찰#대통령#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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