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청소년도 성(性)을 알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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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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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공부도 잘하고 예쁘게 생겼으며, 얌전하기까지 한 여고생 이야기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엄마가 보호자를 자처했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통학했다. 학원에 갈 때나, 밤늦게 귀가할 때도 엄마는 늘 곁에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아이 신변이 안전하니 그것으로 위안이 됐다.

언제부턴가 아이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유를 알고 난 부모는 경악했다. 임신이라니! 아이를 홀로 둔 적이 없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은가. 아이를 추궁했다. 이실직고에 엄마는 넋이 나갔다. 새벽에 남자친구와 아파트 옥상에서 성(性)관계를 가졌단다.

이번에는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 화장실 이야기다.

여자화장실 입구에서 학생 3명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점심시간도 다 끝나가는데…. 교사가 의아해하며 다가갔다. 이유를 물었더니 학생들은 “저기, 저기”만 반복했다. 교사가 화장실에 들어갔다. 한 칸에서 민망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녀 학생이 성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시퍼런 대낮에 학교 화장실에서 말이다. 교사는 까마득하게 현기증을 느꼈단다.

며칠 전 필자가 들은 이야기다. 두 사건 모두 최근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 했다. 학교나 부모 모두 쉬쉬하지만 그 동네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일찍 성에 눈을 뜬다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전한 사람은 “그 아이들, 성에 대해 너무 몰라요”라며 혀를 쯧쯧 찼다.

‘이 놈의 환경’ 탓이다. 성인광고가 인터넷 공간에 넘친다. 더 노골적인 성인물도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러니 못된 어른 흉내를 내며 음습한 성으로 빠져드는 게 아닌가.

반면 성이 건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드물다.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 중 그 어디도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똑 부러진 프로그램 하나 없는 셈이다.

몇몇 학교에서 성교육을 시행한다지만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고작 틀에 박힌 성교육 비디오를 틀어주거나 ‘성은 소중한 것이니 함부로 하지 마라’는 식의 강의가 대부분이다. 낙태당한 태아 사진을 보여주며 ‘생명을 경시하지 마라’고 훈계하는 곳도 있다. 아이들은 이런 성교육에 관심이 없다. 그러니 성을 모른다. 콘돔이란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게 민망해서일까. 피임법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얼마 전 복지부는 사후피임약을 의사의 처방을 받고 구입하도록 한 현 제도를 유지키로 했다. 종교계 반발 때문이라지만, 미성년자의 약품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고 한다. 성에 무지(無知)한 아이들이 사후피임약을 ‘관계 후 먹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만병통치약’쯤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기자만 모르는 것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어떤가. 16세의 한 소녀는 알몸 사진을 보내라는 채팅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그 소녀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이 소녀는 현재 성폭행 피해자 시설에 머물고 있다.

연일 반인륜적인 성폭행 사건이 터지고 있다. 화학적 거세와 사형제도 부활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뭔가 빠진 느낌이다. 어른들이 약장사처럼 “애들은 가라”만 외치는 건 아닌가 싶다. 꼭꼭 감추니 탈이 나는 것이다. 아이들도 성을 제대로 배울 권리가 있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청소년#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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