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李 대통령의 사과, 진정성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25일 03시 00분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대(對)국민 담화문을 발표해 친인척 및 측근 비리에 대해 사과했다. 이 대통령은 “근자에 제 가까운 주변에서, 집안에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렸다”면서 “고개 숙여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할수록 억장이 무너진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모두가 제 불찰로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다”는 회한이 담긴 말들을 쏟아냈다. 허리도 두 차례 90도 가까이 굽혔다. 이 대통령은 “개탄과 자책만 하고 있기에는 현안 과제들이 엄중하고 막중하다”면서 “심기일전해서 국정을 다잡아 일하는 것이 제게 맡겨진 소임으로 더욱 성심을 다해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의 비리 문제로 사과성 발언을 한 것은 올해 1월 신년 국정연설과 2월 취임 4주년 회견에 이어 세 번째다. 앞의 두 번은 김두우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과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 등 주요 측근들의 비리에 대한 것이었지만 용어와 내용 면에서 사과로 느끼기에는 미흡했다. 이번에는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정권 창업 공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복심(腹心)이나 다름없는 김희중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까지 비리에 연루된 터라 사과의 강도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과문이 나온 과정을 보면 진정성에 의구심이 든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이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가 통보된 것은 이날 오후 1시 40분이었다. 이런 중요 사안이라면 며칠 전, 최소한 몇 시간 전에라도 예고하는 것이 상식이다. 더구나 사과문이 발표된 오후 2시에는 지상파방송 3사가 공동으로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첫 토론회를 생중계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는 TV 화면에 자막으로 간단하게 처리됐다. 국민의 관심이 쏠린 친인척 및 측근 비리와 관련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은 며칠 전부터 나왔고, 그 시점은 검찰이 이상득 전 의원을 기소할 때쯤이 될 것으로 예측됐다. 이 대통령은 이런 예상을 깨고 마치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전격적으로 사과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통령의 사과는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한 법이다. 일각에서 기록용으로 남기거나 사과하는 모양새만 갖추려고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대국민 담화문#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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