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훈]다문화 사회의 조건

  • 동아일보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고대 세계의 유물을 접하는 건 큰 즐거움이다. 혹시 해외여행의 기회가 생기면 꼭 박물관을 찾는 것도 그래서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선 ‘함무라비 법전’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고, 대영 박물관에선 ‘로제타석(石)’ 주변을 서성였다. 고대 아시리아의 화려한 성벽이나 ‘날개달린 황소상(像)’도 인상 깊었다.

국내에서도 이런 즐거움을 맛볼 기회가 간혹 생긴다. 2008년 열린 ‘황금의 제국-페르시아 특별전’이 대표적이다. ‘황금’이란 단어에서 짐작하겠지만 페르시아 문화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유물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 초반 오리엔트를 최초로 통일한 제국이다. 기원전 3000년 무렵 메소포타미아 북부에 세워진 작은 도시국가가 부침(浮沈)을 거듭하다 결국 대업을 이룬 셈이다. 동시에 수많은 민족이 제국의 구성원으로 편입되면서 아시리아는 역사상 첫 다문화 제국이 됐다. 그러나 이 다문화 제국은 실패로 막을 내렸다.

아시리아인들은 전투력은 강했지만 포용력이 약했다. 정복지의 문화를 말살했다. 저항하면 처형했다. 자비와 관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자비한 통치에 민심은 등을 돌렸다. 피지배 민족들의 반란이 속출했다. 오리엔트 통일의 대업을 이룬 지 고작 50여 년. 반란군은 수도 니네베를 폐허로 만들었다.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로 오리엔트를 통일한 주역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이다. 이 업적도 대단하지만 아케메네스 제국의 진면목은 다른 데 있다. 다문화 국가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 전범을 만들어 몸소 실천한 것이다.

아케메네스의 키루스 대왕은 기원전 6세기 중반 메디아, 리디아를 차례차례 정복했다. 신바빌로니아 왕의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성문을 활짝 열어 키루스 대왕을 맞았다. 바빌론에 입성한 키루스 대왕은 즉각 ‘공약’을 발표했다.

“나는 어떤 민족도 위협하지 않겠다. 정복지의 전통과 종교를 존중하겠다. 그 누구도 다른 민족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키루스 대왕은 약속을 모두 지켰다. 바빌론에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었다. 그들의 종교를 허용했고 성전 건설도 허락했다. 구약성경에 ‘고레스 왕’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키루스 대왕이다. 그리스 역사가들도 그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이며 자비로운 군주’라고 칭송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아시리아와 아케메네스 제국의 차이가 확연해진다. 아시리아가 갖추지 못한 덕목인 관용을 아케메네스 제국은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키루스 대왕의 뒤를 이은 제왕들도 관용을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아케메네스 제국이 230여 년간 번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이제 2012년 7월의 대한민국을 보자. 외국인 혐오증, 즉 제노포비아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주최한 다문화정책 토론회를 외국인 혐오단체 회원들이 방해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다문화정책이 민족말살 정책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권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던 2500여 년 전에도 관용이 제국이 번영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그들에게 1948년 유엔이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의 다음 한 문장을 꼭 암기할 것을 권하고 싶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의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corekim@donga.com
#다문화#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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