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약문화 소화할 수준의 시민의식 아직 안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30일 03시 00분


여수엑스포 조직위원회가 27일 예약관람제를 전격 폐지했다. 부처님오신날을 포함한 연휴를 맞아 이날 8개 주요 전시관의 예약이 조기 마감되자 관람객 수백 명이 조직위 사무실을 점거하고 거세게 항의했다. ‘떼법’의 기세에 눌린 조직위는 예약제를 없던 일로 하고 100% 선착순 관람제로 바꿨다. 엑스포 사상 처음 시도해 기대를 모았던 예약관람제가 고성(高聲)과 폭언 앞에 어이없이 무너진 것이다.

선착순 관람제로 전환한 28일에는 관람객이 전날보다 절반 이상 줄었지만 주요 전시관에 입장하려면 뙤약볕 아래서 5∼7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예약제에선 30분∼1시간만 기다리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었다. 3km 가까이 늘어선 대기 행렬에선 새치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원칙이 무너지면서 모두가 피해자가 됐다. 하루 종일 줄서서 인기 전시관 두어 곳밖에 보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여수엑스포의 관객 동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직위가 연휴에 관람객이 급증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일찍 입장하면 현장 예약이 가능하다”고 안내한 잘못도 있었다. 하지만 예약문화가 정착돼 가던 터에 일부 관객의 항의에 화들짝 놀라 예약제를 폐지한 것은 성급했다. 예약제의 근간은 유지하되 연휴 등엔 예약하지 않고 현장을 찾은 관람객에게 일정 비율의 입장권을 선착순 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국제 행사장에서 서비스에 불만이 있다고 떼로 몰려가 소란을 피운 것도 부끄러운 시민의식이다. 내릴 역을 지나친 승객이 “손해배상 소송을 걸겠다”며 기관사를 위협해 지하철을 역주행시키고, 민원을 계속 제기해 지하철 냉방 온도를 낮춘 일도 있었다. 국제행사나 지하철의 운용 주체가 불합리한 떼법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서야 선진문화가 정착하기 어렵다.

여수엑스포는 80개의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인파가 몰려 오래 기다려야 하는 곳은 아쿠아리움 등 몇몇 전시관 정도다. 국제관 주제관 기업관에도 볼거리가 많고 관람객이 직접 참여해 즐길 수 있는 공연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아쿠아리움은 엑스포 기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운영된다. 선진 예약문화와 관람객의 질서의식으로 여수엑스포가 세계의 모범사례로 남는 박람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여수엑스포#예약관람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