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평인]젠은 있어도 禪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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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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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불교의 선(禪)을 일본에서는 젠, 중국에서 찬이라고 발음한다. 그런데 서양에는 젠은 있어도 선이나 찬은 없다. 대학시절 동양철학 교재를 아직도 갖고 있다. 영어로 된 이 책의 불교 편에 선불교를 소개하는 장이 있는데 Zen과 Zazen이라는 말이 나온다. Zen과 Zazen은 선과 좌선(坐禪)을 일본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Seon(선)이나 Chamseon(참선)은 없다.

한국 선의 세계화 아득하기만


지난해 여름 프랑스에 들렀다가 일본 불교 조동종(曹洞宗) 선사 데시마루 다이센(弟子丸泰仙·1914∼1982)의 전기가 나왔기에 샀다. 유럽 서점의 불교서적 코너는 대개 티베트 불교의 책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선불교 책이 모처럼 코너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 반가웠다. 데시마루는 젠을 유럽에 확산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의 최초의 전기가 프랑스인 제자들에 의해 ‘Sensei(‘선생’의 일본 발음)’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이다.

데시마루는 은사 사와키 고도(澤木興道)의 유언을 받들어 프랑스로 건너갔다. 은사는 1965년 입적하면서 “인도에서 불교가 죽자 달마가 불교를 가지고 동쪽으로 왔다. 일본의 불교가 죽었으니 너는 서쪽으로 가서 그곳에서 법을 전하라”는 말을 남겼다. 데시마루가 1967년 파리 북역에 첫발을 디뎠을 때 나이 53세. 프랑스어는 전혀 할 줄 몰랐고 영어만 아주 조금 할 줄 알았다. 무일푼의 그가 가진 것은 가사 한 벌과 은사의 노트 한 권, 그리고 좌선용 방석뿐이었다.

선사 데시마루가 파리의 거리에서, 남프랑스 해변에서 직접 보여준 묵조선(默照禪)의 수행법은 프랑스인의 눈길과 마음을 끌었다. 앙드레 말로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같은 지성인이 데시마루와 교류했고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는 자신의 무용단에 그의 좌선 수업을 받도록 했다. 일본 불교학자 스즈키 다이세쓰 데이타로(鈴木大拙貞太郞)가 영어로 쓴 선불교 서적들이 20세기 전반부터 서양에 널리 읽힌 덕도 봤을 것이다.

한국 조계종의 현대적 출발은 1947년 성철 스님 등이 중심이 된 봉암사 결사에서 비롯된다. 봉암사 결사와 이후 1950년대의 불교 정화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조동종 등 일본 불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처(帶妻·처를 둠) 관행을 몰아내고 독신 전통을 되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계종은 동아시아 선불교 중에서 전통에 가장 충실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세계 속에서는 조계종이 아니라 조동종이 선불교를 대표한다. 세계 불교 중에서 선불교의 비중도 큰 것이 아니지만 그마저도 일본 젠이 대표하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도 숭산 스님(1927∼2004) 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글로벌 선사가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교포를 상대로 포교를 하다가 뜻한 바 있어 1972년 혈혈단신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 수리공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곳 대학생들에게 조계종의 간화선(看話禪)을 전파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현각 등이 다 그의 제자들이다. 우리들끼리 독신 전통이 대처 전통보다 훌륭하다느니, 조계종의 간화선이 조동종의 묵조선보다 뛰어나다느니 아무리 떠들어 봐야 밖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다. 한국 선에 일본 젠을 뛰어넘는 우수성이 정말 있다면 그것을 서양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래야 한국 선의 세계화, 불교의 한류화가 가능하다. 그래야 제이팝을 능가하는 케이팝처럼 젠 스타일을 능가하는 선 스타일이 나올 수 있다.

절집 내부 알량한 권력 넘어서라


부처님 오신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조계종이 시끄럽다. 절집의 관심이 밖보다는 너무 안으로만 향한 것도 갈등의 먼 원인 중 하나다. 데시마루는 일본 불교가 타락했다고 진단한 뒤, 유럽에서 출발해 미국을 거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일본 불교를 개혁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유럽으로 떠났다. 절집 내부의 알량한 권력을 갖고 다투기보다는 세계를 향해 이런 결기를 펼쳐 보이는 스님들이 많아질 때 절집도 변할 것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오늘과 내일#송평인#선#젠#부처님 오신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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