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태진]가증스러운 北의 ‘통영의 딸’ 답변서

  • Array
  • 입력 2012년 5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
북한은 지난달 27일 유엔에 ‘신숙자 씨가 간염으로 사망했으며, 두 딸인 오혜원 규원 자매는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다. 또 신숙자 모녀는 임의적 구금과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공식 답변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런 북한의 주장은 가증스러운 거짓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껏 거짓을 일삼아 왔던 북한의 전력으로 인해 신 씨가 간염으로 사망했다는 북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제사회 구성원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통영의 딸’로 불리는 신 씨는 북한의 불법 납치와 정치범수용소 강제수감을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북한이 신숙자 모녀 구출운동에 찬물을 끼얹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신 씨의 죽음을 위장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혜원 규원 자매가 가족을 버리고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다는 북한의 주장도 거짓이다. 이들 자매는 독일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유가 무엇인지 경험했다. 이들이 입북한 만 11, 9세는 어느 정도 사리 분별과 판단능력을 갖춘 나이다. 자매가 입북 후 북한 체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이뿐만 아니라 오길남 박사가 북한의 공작명령을 받고 독일로 나올 때 신 씨는 탈출을 거부하는 남편의 뺨을 때리고 울면서 “우리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생각하라”며 오 박사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런 부모의 모습을 딸들이 보지 못했을 리 없다. 아버지가 처한 어처구니없고 부당한 현실을 혜원 규원 자매가 직시하지 못했을 리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을 설득해 탈출시킨 아내가 자식들이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자라게 교육시켰을 리도 없다. 북한 당국이 탈출한 오 박사에게 보낸 딸들의 육성녹음에서도 큰딸인 혜원 씨는 “조국에도 훌륭한 아버지가 계신데, 아버지의 사랑이 그립습니다”라고 말했다. 딸들은 분명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설령 혜원 규원 자매가 아버지를 원망한다고 했더라도 이는 강압에 의한 것일 확률이 높다.

신숙자 모녀가 임의적 구금과 관련이 없다는 북한의 주장도 명백한 거짓이다. 나는 1992년 요덕수용소에서 석방되기 전 혁명화구역에 수감돼 있던 신숙자 모녀를 만난 적이 있다. 북한은 연좌제를 적용해 정치범의 가족(어린이 노약자 포함)까지 수용소에 수감한다. 신숙자 모녀가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것도 연좌제 때문이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상황을 ‘임의적 구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신숙자 모녀를 요덕수용소에서 만나고 두 눈으로 목격한 증인이 여기 이렇게 살아있는데도 어떻게 저런 뻔뻔한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인권 문제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마다 북한은 거짓말과 거짓증거 제시로 상황을 무마하려고 한다. 이것은 북한의 고전적인 전략이다. 북한의 이번 발표는 신숙자 모녀에게 쏠리고 있는 국제사회의 관심과 북한에 대한 비난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1990년대에 요코다 메구미 납치 문제가 불거지자 메구미가 우울증으로 자살했다면서 가짜 유해를 보낸 전력이 있다.

북한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근거도 불분명한 한 장짜리 답변서가 아닌 제대로 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신 씨가 간염으로 사망한 것이 사실이라면 유해 송환을 통해 사실을 입증하면 된다. 혜원 규원 자매가 정말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다면 자유로운 제3국에서 유엔 감시하에 부녀 상봉을 통해 국제사회에 자신들이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입증하면 된다. 도대체 무엇이 어렵고 두려워 근거도 불분명한 일곱 줄짜리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북한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고 책임 있는 답변을 행동으로 보여야 할 것이다.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본부 대표
#시론#김태진#북한#통영의 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