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민 오락장’ 노래방 언제까지 화마에 방치할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7일 03시 00분


어린이날인 5일 부산 도심의 노래방에서 화재가 발생해 9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한 사건은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후진국형 사고다. 불이 난 노래방은 화재에 무방비 상태였다. 6층 건물의 3층에 자리 잡은 24개의 방은 통로가 ‘ㅁ’으로 연결된 구조였다. 이런 특이한 구조로 인해 비상구 3개가 탈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비상구 2개는 불이 난 출입구 주변에 위치해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나머지 1개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찾기가 힘들었다. 이용객들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려 해도 미관과 방음을 위한 고강도 통유리가 건물 외부를 덮고 있어 잘 깨지지도 않았다.

국내에는 노래방이 3만6800개, 단란주점이 1만5000개에 이른다. 그나마 탈출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3층에 위치한 노래방의 화재 대비가 이런 정도로 열악하니 비상계단밖에 없는 지하 노래방들은 어떤 상황일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번 사고는 노래방 화재 방지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취약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노래방 업주와 종업원들이 화재에 대응한 자세는 한심했다. 화재 발생 사실을 손님들에게 신속하게 알리지 않았다. 119 신고 대신 자체적으로 진화(鎭火) 작업을 벌이다 실패하는 바람에 피해를 더 키웠다. 손님들을 끝까지 대피시키지 않고 종업원들만 먼저 빠져나왔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 부산에서 그동안 노래방과 실내 사격연습장 등 건물 내 안전사고가 자주 났다. 부산시와 소방당국이 재발 방지 노력을 소홀히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안전점검과 소방교육이 제대로 시행됐는지 조사해야 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노래방의 특성상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비상벨 소리가 손님들에게 들리지 않기 쉽다. 화재가 나면 자동으로 노래방 기기가 작동을 멈추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비상구의 위치도 알기 쉽게 표시해 놓아야 한다. 노래방 기기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데 안전시스템은 답보 상태이니 답답한 노릇이다.

노래방은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레크리에이션 시설이다. ‘국민 오락장’이 화마(火魔)에 방치돼 있으니 안전한 사회와 거리가 멀다.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고 생명이 경시되는 사회가 소득만 높아진다고 선진국이 될 수는 없다.
#노래방#단란주점#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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