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직함을 갖게 된 김정은이 어제 평양 김일성광장 열병식에서 20여 분 동안 처음으로 공개연설을 했다. 그의 아버지 김정일은 1992년 4월 인민군 창건 60주년 기념식에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고 짧게 외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대중 공개 육성(肉聲)이었다. 20년간 후계자 수업을 받으며 북한을 장악한 김정일은 공개연설을 통해 주민을 설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30세의 김정은은 그를 둘러싼 핵심세력과 평양 주민에게 최고지도자로서 대중 공개연설을 통해 인정받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김정은은 낮은 톤의 목소리, 머리모양, 옷차림부터 걸음걸이까지 김일성 따라하기에 나선 듯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권력을 잡은 중압감 탓인지 시종 좌우로 몸을 비틀었고, 준비된 원고를 또박또박 읽느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김일성의 흉내는 냈지만 조부의 카리스마까지 체득하지는 못했다.
그는 열병식에 참석한 간부와 병사들에게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부대가 착용했던 군복을 입혔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첨단 디지털시대에 북한의 시계는 60년 전에 멈춰 서 있었다. 6627자짜리 연설도 역사 왜곡과 시대착오로 꽉 차 있다. 북한 주민을 ‘김일성 민족’이라고 부른 것은 김일성을 단군의 지위로 끌어올리려는 의도인 모양이지만 가당찮은 ‘한민족 모독’이다. 그래 놓고 ‘같은 민족끼리’를 외칠 것인가.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의 영도 아래 파란 많은 수난의 역사에 영원한 종지부를 찍고 조국과 인민의 존엄을 민족 사상 최고의 경지에 올려 세웠다”고 강변했다. 북은 부존자원이 풍부하고 일제가 남겨 놓은 공업시설이 편중한 덕에 1970년대 중반까지 경제력에서 남한을 앞섰다. 그러나 김씨 세습왕조의 폐쇄경제와 선군(先軍) 정치로 지구촌 최악의 실패국가로 전락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김정은은 선군을 강조하며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민의 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연설했다. 이틀 전 발사 135초 만에 8억5000만 달러짜리 장거리 로켓이 산산조각 난 것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북한은 로켓 발사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3차 핵실험 카드를 내밀 가능성이 높다. 젊은 후계자가 독자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강성 군부에 업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로서는 북한 체제의 도발을 막기 위한 국론의 결집과 안보태세 강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