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기획재정부의 정당 복지공약 분석 결과 발표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주의를 줬다. 선관위는 “정당 간의 자유경쟁 관계가 정부의 개입에 의해 왜곡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직선거법 9조의 취지”라며 “재정부가 정당 복지공약 예산 추계액이 과다하다는 점을 부각해 공표한 행위는 유권자의 판단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선거 결과를 왜곡하는 것으로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재정부는 그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양당의 복지공약을 모두 실천하려면 5년간 최소한 268조 원의 예산이 새로 추가돼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려면 추가 증세나 국채 발행을 해야 하고, 결국 미래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공약을 마구잡이로 내놓아 나라살림을 거덜 내는 일이 없도록 곳간을 챙길 책무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총선 공약의 포퓰리즘을 비판하더라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재정부의 경우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공약을 비판하거나 지지한 것이 아니고, 발표 내용에서도 정당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나라살림을 책임진 기관으로서 유권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 것인데도 선관위가 중립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선관위는 정당과 후보자가 실현 가능한 정견 정책을 제시하는지 유권자들이 정확하게 비교 평가할 수 있도록 도와줄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선관위는 홈페이지에 정책 경쟁을 유도하는 정당·정책정보시스템 코너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각 당의 주장만 나열돼 있을 뿐 실현 가능한 정책인지, 당이 추계한 예산이 합당한지에 대한 검증은 없다. 정보시스템 자료실에 ‘매니페스토 정책 어젠다 및 평가지표’가 게시돼 있지만 총선 공약에 대한 평가가 아니어서 유권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전문성을 지닌 정부가 나서 유권자의 판단을 돕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선관위가 막는 것은 올바른 선거관리가 아니다.
수원지검이 어제 발표한 용인경전철 비리 수사 결과는 포퓰리즘 공약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정문 전 용인시장은 2002년 지방선거 때 경쟁 후보의 경전철 추진 공약을 베껴 당선된 뒤 경제성에 대한 검토 없이 사업을 밀어붙여 용인시에 수백억 원의 손실을 끼쳤다. 당시 정부가 제동을 걸었더라면 용인시가 재정난에 빠져 올해 2월 4420억 원 규모의 지방채 발행을 요청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선관위는 용인경전철의 재앙을 지켜보고도 포퓰리즘 공약의 폐해를 국민에게 알리는 일을 막으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