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동영]박원순을 풀어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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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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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사회부 차장
이동영 사회부 차장
‘박원순호(號)’가 출항한 지 3일로 100일이 됐다. 서울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을 전격 도입했고 밤을 새워 가며 자원봉사도 했다. 일거수일투족은 트위터와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자신을 싫어하는 시민에게 폭행당하는 불상사도 있었다. 서울시 청사는 시장을 직접 만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민원인의 목소리로 조용한 날이 별로 없다.

쉽지 않은 100일을 보냈지만 취재 현장에서 만난 박 시장은 항상 의욕에 넘쳐 있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많은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죠.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씩 해나가면 됩니다. 저는 그분들을 믿어요.”

이 대목에서 그가 말하는 ‘많은 분’에 눈길이 간다. 그가 애정을 보이는 ‘많은 분’에는 크게 네 가지 그룹이 있는 듯하다.

첫째 민주통합당이다. 무소속인 그에게 선거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준 게 사실이다. 현재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정무수석비서관 등 핵심 라인이 민주당 출신인 점을 봐도 알 수 있다. 민주당은 한명숙 대표 출범 이후 박 시장의 입당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두 번째는 시민단체다. 박 시장은 한국의 시민운동을 이끈 주역이다. 하지만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박 시장 당선 이후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을 높여주는 서울시 방안에 “토건(土建)시장이 되겠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세 번째는 이익집단이다. 이들은 각자 소속된 단체에 더 많이 지원해 달라는 요구를 쏟아낸다. 장애인 운전사 철거민 등 소외계층을 위해 박 시장은 항상 고심한다. 법적으로 쉽지 않아도 뭔가 방안을 마련하려 애를 쓴다.

네 번째는 지지 그룹이다. 이들은 트위터를 통해 강력한 성원의 메시지를 보내 박 시장을 격려한다. 박 시장은 바쁜 일정에도 트위터로 지난해 11월 12일과 16일 ‘번개 모임’을 할 정도로 정성을 쏟는다.

이들 네 그룹의 지향점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박 시장이 항상 자신의 울타리에 머물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당적을 갖고 정치 행보에 나서기를 바라고, 시민단체는 좌든 우든 자기 쪽으로 더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이익집단은 그 어떤 가치보다 자신들을 더 배려해 주길 원한다. 지지층은 박 시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과 인터뷰하는 것까지 극렬 제지하는 데 성공할 정도로 ‘편 가르기’에 입김이 세다.

여야를 떠나 정당정치에 염증을 느낀 시민의 지지를 얻어 무소속으로 당선된 그는 “특정 세력이 아니라 모든 시민과 함께하는 시장이 되겠다”고 밝혀왔다. 선거 캐치프레이즈도 ‘시민이 시장입니다’였다.

그런데도 ‘박원순 서울시장’을 탄생시켰다고 자부하는 그룹은 각자 박원순의 발목에 고리를 걸고 있다. 그래서인지 박 시장은 아직 자신만의 색깔을 기대만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복지정책인 희망온돌프로젝트나 뉴타운 출구전략 내용도 전임자가 내놓았던 부분이 적지 않다. 물론 도시 안전을 위해서는 그토록 비판했던 ‘토건사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서울시장이다. 이제 100일이라지만 기존 정치와의 차별화 기대 속에 당선된 그가 ‘진짜 박원순 정책’을 내놓지 못한 것은 유감일 수밖에 없다.

네 그룹이 전유물처럼 여기는 박원순을 이제 각자의 품에서 석방시켜 주고 그가 마음껏 시정을 펼쳐가도록 서울시민에게 돌려주면 어떨까. 저마다 건 강력한 고리 때문에 ‘박원순호’가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동영 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박원순#반값등록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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