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형준]경제민주화 이끌 한국정치 4.0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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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우리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4.0’이란 용어가 최근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자본주의 4.0’의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는 자본주의가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1.0), 정부 주도의 수정 자본주의(2.0), 시장의 자율과 무한 경쟁을 강조한 신자유주의(3.0)를 거쳐 다수의 행복과 안정된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자본주의 4.0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칼레츠키가 작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고, 일본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정체된 상황이라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어렵다”며 “활력 넘치는 경제와 사회 분위기를 가진 한국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유용한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칼레츠키의 이런 전망대로 최근 여야는 경쟁적으로 헌법 제119조 제2항에 규정된 ‘경제민주화’를 토대로 한 새로운 한국형 자본주의의 구축을 외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거대 경제세력으로부터 시장과 중소기업, 소비자를 보호하는 공정경제의 실현 관점에서 경제민주화 실현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했다.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명명한 당의 새로운 정강·정책 전면(前面)에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통해 경제민주화 구현’이란 내용을 담았다. 민주당도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부자 증세’를 4월 총선의 3대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새 한국형 자본주의 모델의 조건

하지만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새로운 한국형 자본주의 모델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런 모델 구축이 특정한 이념 세력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진보가 추진하는 모델은 선(善)이고 보수가 지향하는 모델은 악(惡)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시각을 넘어 어느 한쪽이 아닌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진보주의에서 성공한 요소와 보수주의에서 성공한 요소를 섞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칼레츠키의 충고를 깊이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정부와 기업, 시장이 대립관계가 아닌 동반자적 관계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유연하게 경제성장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그의 충고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스웨덴의 평등 민주주의와 보편적 복지 모델은 진보 세력이 일방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보수와의 대타협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었다. 1930년대 정권을 잡은 진보의 사민당과 중도 우익의 농민당이 자신들의 주장에서 한 발짝씩 물러나 타협해 스웨덴 복지 모델의 기초를 마련했다.

자본주의에서 파생(派生)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적 차이 그리고 소외계급을 축소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스웨덴 복지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르프순드 민주주의(Harpsund Democracy)’로 대표되는 정책 결정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하르프순드는 총리의 여름별장이 있는 곳인데 총리가 목요일마다 여야대표, 노사대표들을 초청하여 타협과 협의를 바탕으로 경제 및 사회 정책 분야의 공조(共助)를 이끌어 낸다.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서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야 간에 경쟁 못지않게 합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치도 진화(進化)해야 한다. 한국 정치 1.0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권위주의 체제’이다. 무소불위의 대통령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됐다. 한국 정치 2.0은 김영삼(YS)과 김대중(DJ)으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적인 민주주의 체제’이다. 민주주의를 지향했지만 권력이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돼 청와대가 모든 정치 과정을 주도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를 보였다.

한국 정치 3.0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보여준 ‘대립적 민주주의’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대화와 타협, 관용은 실종되었고, 극단과 배제의 정치가 주를 이루었다. 이런 대결 정치 속에서 여당은 철저히 청와대의 눈치를 보면서 무력화됐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치중했다.

타협과 협조로 공평 공정 공생을

한국 정치 4.0은 ‘합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힘에만 의존하고, 양극단의 대결에 매몰되며, 포퓰리즘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정치에서 벗어나 3C, 즉 타협(Compromise), 협조(Co-operation), 합의(Consensus)가 핵심이 된다. 올해 총선과 대선은 바로 한국 정치 4.0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디딤돌 선거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3C 정신에 바탕을 둔 공평(公平) 공정(公正) 공생(共生)이 살아 숨쉬는 새로운 한국형 자본주의 모델이 만들어지는 원년(元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형준 객원논설위원·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joon57@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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