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나라당 강령, 北 ‘개혁·개방’ 반 토막 내선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31일 03시 00분


한나라당은 새로운 정강·정책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색깔로 당을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드러냈다. 이 대통령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선진화’란 용어가 사라진 자리에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모토로 하는 박근혜식 복지모델이 들어섰다.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작은 정부의 기조를 탈피해 시장의 실패에 정부가 과감하게 개입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당의 헌법 격인 정강·정책에서 ‘좌클릭’을 선언한 셈이다.

대북(對北)·통일정책에선 ‘북한의 개혁·개방을 지원 내지 촉진토록 노력한다’고 한 기존 강령에서 ‘개혁’이란 단어를 슬그머니 들어냈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원조인 개혁·개방은 두 단어가 한 묶음으로 쓰인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의 도입이라는 제도적 개혁을 통해 과감한 개방에 나서 오늘날 중국의 경제발전을 선도했다. 옛 소련이나 베트남도 개혁을 수반한 개방이 성공의 방정식임을 보여준다. 북한도 살아남아야겠다는 절박감 속에서 개혁·개방을 고민하는 터에 한나라당 스스로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다”며 불가분(不可分)의 개혁·개방을 반 토막 내려는 것인가.

새 정강·정책은 대북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를 기초로 한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기조를 담았지만 ‘북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그 대신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북한을 다루는 방식에서 당근과 채찍을 병용하는 유연함이 필요하지만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평화통일의 원칙은 훼손할 수 없는 가치다.

박 위원장의 비대위 체제는 정강·정책 개정 논의 초기부터 ‘보수(保守)’ 용어 삭제 방침을 천명했다가 여론에 밀려 철회하는 오락가락 행보를 노출했다.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을 명시한 부분도 갑론을박 끝에 정강·정책에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지만 북한체제의 변화 유도가 아닌 북한 주민이 인간다운 삶을 유지토록 하는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비대위 체제가 야당이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지향점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박 위원장이 평소 강조하던 ‘원칙에 입각한 유연한 대북정책’은 이처럼 목표를 잃고 바람에 휩쓸리는 모습이 아닐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보수의 본질적 가치를 버리고 야당 흉내나 낸다고 국민이 표를 몰아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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