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상식파 안철수’의 서울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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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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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논설위원
김순덕 논설위원
지난주부터 실실 웃음이 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하 안철수)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무소속 출마설이 나오고부터다. 여야 정치권은 테러당한 분위기다.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선 여야가 누구를 내놓든, 어떤 구도를 만들든 안철수가 압도적 1위로 나왔다. 주민투표 뒤끝과 곽노현 교육감의 추문으로 개운치 않았던 선거가 뜻밖에 재미있어졌다.

기득권에 대한 ‘글로벌 분노의 해’

안철수는 스스로 정치체질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시대정신을 읽고, 넉 달간 25개 도시를 돌며 수천 명의 대중 앞에서 ‘청춘콘서트’라는 강연을 한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정치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한 달 전 그는 한 인터뷰에서 “기득권이 과보호되고 권력층이 부패하고 상하격차가 심하게 벌어지고 계층 간 이동가능성이 완전히 닫히는 순간 나라가 망한다.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했다. “분노한 20, 30대가 내년 선거에 대거 몰릴 것”이라고 해서 ‘사상’을 의심받기도 했다.

이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지난주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2011년은 글로벌 분노의 해’라고 썼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혁명, 그리스와 스페인의 청년시위, 인도와 중국 이스라엘 중산층의 항의사태를 꿰뚫는 시대정신이 기득권층에 대한 의분(義憤)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도 견뎌온 대중이었다. 그러나 성장의 열매는 저희들끼리 챙기고, 공직으로 제 잇속만 챙겨온 엘리트의 부패에 더는 못 참고 나선 것이다.

분노의 시위가 유독 미국엔 거의 없는 이유는 미디어와 선거로 분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역시 “사회구조를 바꾸는 최선책은 결정권자들이 바꾸는 것”이고 “대중이 바꾸는 방법 중 제일 비용이 적게 드는 선거가 차선책”이라고 했다. 어떤 선거든 출마를 고려하고 있었다면 의도적 발언으로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독재국가에선 고비용 혁명으로 독재자를 몰아낸 뒤 저절로 민주와 번영이 올 거라며 희망에 부풀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도 정치권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특히 젊은 세대를 절망시키고 있다. 권력욕과 돈, 이념 때문이라는 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분석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자금과 표를 몰아주는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데다 우파는 시장만능, 좌파는 정부만능주의로 양극화하면서 죽어도 타협 않는 모습이다.

“지금 좌파 우파 논쟁하면서 허송세월할 만큼 상황이 녹록지가 않다”(8월 12일 창원 청춘콘서트). 안철수의 일갈은 그래서 시원하다. “굳이 좌파 우파 나눠야 한다면 상식과 비상식으로 나눠야 한다”며 이제 누군가 물어보면 “저는 상식파인데요” 하겠다고 그는 말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도 여야 모두 자기들이 이겼다고 우기지만 우리 국민 10명 중 7명은 “어느 당도 이겼다고 할 수 없다”는 게 동아시아연구원 조사 결과다. 국민이 원하는 건 좌우 극단으로 치닫는 게 아니었다. 다같이 능력껏 잘살면서 양보도 좀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삶인데, 중간지대를 대변하는 상식의 정치가 없다는 얘기다.

‘꽃가마’ 거부하고 끝까지 가라

효율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효율적 측면으로 보면 나는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이라는 안철수는 유쾌한 반란군이다. 그러면서도 “난 강남도 안 살고, 좌파도 아니다”라는 말로 민주당을 비롯한 좌파를 불편하게 한다. “있는 법만 잘 집행해도 상생할 수 있고” “고용창출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다 문제에 대한 방안이 있는데 (정부가) 단지 의지가 없어 실행을 안 할 따름”이라는 발언은 보통사람의 상식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의 행정이나 정치, 정책능력은 입증된 바 없어 ‘거품’이 적지 않을 거다. 컴퓨터백신업체 경영자로서의 리더십이 과대평가됐다는 지적도 있다. 대기업을 비판하면서 동종업계에선 대기업처럼 구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도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여야의 ‘꽃가마’를 거부한 그에게는 기성정치인한테 찾기 힘든 공인의식이 엿보인다. 자신의 성공이 혼자 잘나서가 아님을 알고, 따라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며 실천하는 ‘철수의 바른생활’은 희소가치가 있다.

여기에 또 다른 도덕성으로 신뢰를 얻고 있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출마선언을 하면 서울부터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부동층까지 불타기 시작한 표심이 겁나는지 여야가 모처럼 한목소리로 안철수 끌어내리기에 열심인 걸 보면 이미 충격파는 퍼진 모양이다. 만일 며칠 뒤 그가 “출마 않겠다”고 발표하거나 한참 뛰다가 단일화 불쏘시개가 될 경우, 괜히 유권자들 가슴에 불을 지른 혐의로 몰릴 판이다.

설령 무소속이어서, 약점이 드러나 망가지면서, 역시 정치판은 진창이기에 패한다 해도 그의 ‘서울콘서트’는 정치판과 제도권에 쇼크요법의 효과를 낼 게 분명하다. 대선주자로 떠오를지 누가 아는가. 안철수는 출사표를 내고 나와 끝까지 뛰어야 한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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