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유호열]통일시계 거꾸로 돌리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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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북한학
유호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북한학
한반도 통일 예측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갔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2009년부터 매년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델파이 기법을 통해 통일 가능 수치를 시간으로 표시했다. 예측시계는 합의형과 흡수형 통일로 분리되고 자정(분단)부터 정오(통일) 사이를 나타낸다. 2010년 합의통일 시계는 오전 3시 45분, 흡수통일 시계는 오전 5시 20분에 멈춰 섰다. 전년도에 비해 각각 34분과 36분 후진했다. 흡수통일 가능성이 조금 더 높게 나왔지만 통일까지의 시간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금년도 조사에서 통일의 시간이 다시 후진하지 않을까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를 통해 통일세 등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을 논의해 보자고 제안한 이후 각계에서 다양한 연구와 공론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분단 이후 줄곧 통일을 꿈꿔 왔고 통일을 위해 모든 걸 해야 할 것처럼 얘기했지만 막상 통일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하니 허술하고 미진한 게 한둘이 아니다. 통일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통일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 더 큰 문제는 통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지배적이어서 아직도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비전과 방안을 시대 흐름에 맞게 전략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北 변화시킬 지렛대 부족하다

5일부터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속에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 민주주의기금이 주최한 ‘북한 민주화를 위한 한미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아시아 안정과 평화를 위해 한반도의 비핵화,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은 필수적이라고 한다. 현재로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고 민주화나 진정한 개혁개방 역시 당분간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나 한미 양국의 대북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대북 지원이 지속되고 김정일 정권이 유지되는 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렛대가 별로 없다는 좌절감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관련 국가들의 노력은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대북제재와 대화를 병행 추진하면서 북한 내부를 향한 정보 유입 노력을 꾸준히 지속해야 한다는 데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만일 언젠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민주화, 개혁개방이 실제로 이루어지더라도 그런 상황이 곧바로 남북한 통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견해 역시 만만치 않다.

미중관계 전문가인 에이브러햄 덴마크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미중 관계가 시간이 갈수록 한반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버락 오바마 정부는 조지 W 부시 정부와는 달리 한반도 문제를 중국에 의탁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처지와 정책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평가했다. 한반도 비핵화, 평화와 안정 문제는 남북한 통일을 위해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이 될 수 없음도 강조했다.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의 전략연구자들은 오바마 정부의 한국 중시정책을 인정하면서도 머지않아 북한이 중국의 절대적 영향력하에 편입될 경우 미국 정부가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중국 주도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중국식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한다면 남북 분단은 영구화될 가능성도 있지만 미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그런 상황을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략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감안하면 새삼 놀랄 만한 주장은 아니지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 핵심 가치를 완벽하게 공유해 21세기 가치동맹으로까지 격상된 한미 양국조차 통일 문제에서만큼은 아직도 거리가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물며 다른 국가들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2008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지지한다고 역사적인 선언을 했지만 통일은 역시 우리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 있지, 어느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현실을 거듭 확인하는 자리였다.

북한 민주화 개혁개방 지원해야

통일 예측 시계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 급변사태 발생으로 전격적인 흡수 형태의 통일이 남북 간 합의에 의한 통일 가능성보다 다소 높다고 진단한다. 혹자는 흡수통일 불가론을 천명해야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남북 관계가 개선돼야 통일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흡수통일만이 유일한 방안이고 이를 위해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면 된다는 생각 역시 옳지 않다. 이제 통일 예측 시계가 더 거꾸로 돌아가면 통일의 기회는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 최선의 상황을 기대하면서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는 게 전략이다. 단순히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자세를 탈피해 북한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적극 지원하면서도 결정적 순간에 전격적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적극적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유호열 객원논설위원·고려대 교수·북한학 yoohy@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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