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철]오리무중(五里霧中) 고교 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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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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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최근 모 교육업체가 개최한 고교 입시 설명회에 서울서만 7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 정도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직후 열리는 대입 지원 설명회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다. 업체 관계자는 “10여 년 동안 설명회를 했지만 이렇게 뜨거운 반응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요즘 중학생 학부모에게 자녀의 고교 진학 문제는 오리무중이다. 한동안 인기가 높았던 외국어고도 예전 같지 않다. 사교육 유발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입시 규제가 심해졌다. 좋은 학교가 많다고 해 이사했더니 웬만한 학교는 자율형사립고로 바뀌어 입학이 어렵다. 그나마 자율형사립고도 우수학생 선발권이 제한되면서 매력을 잃었다. 고교를 다양화해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을 넓혀 준다더니 한 군데밖에 지원을 못한단다.

자녀가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이기심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이기심은 충족시켜 줘야 한다. 바람직한 방법은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모든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드는 것이다. 우수 학교를 희망하는 학부모의 욕구를 억누르는 것은 미봉책도 못된다. 혼란스러운 학부모들이 기댈 곳은 사교육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교 입시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74년 서울과 부산을 시작으로 고교 평준화가 실시된 이후 여러 지역에서 도입과 폐지를 반복하곤 했다. 지금도 고교 평준화 제도가 쟁점인 지역이 적잖다.

역대 정권과 정부는 평준화 유지를 원칙으로 단점을 보완하려는 정책을 펴 왔다.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이른바 특수목적고, 자율형사립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교선택제도 그 가운데 하나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교육만큼 이념 갈등이 치열한 분야도 드물다. 그동안 교육 평등을 강조하는 진보세력과 수월성 교육에 무게를 두는 보수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해 왔다. 이러다 보니 전 정권의 정책을 다음 정권이 폐지하거나 유야무야한 일도 많았다.

이런 와중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고교선택제에 대해 논란을 자초한 것은 경솔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곽 교육감은 “교장과 교사 대다수가 폐지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제도의 수정 또는 폐지를 시사했다. 조사 대상은 서울지역 교사 300여 명이다. 이런 문제를 교사 의견만 듣고 언급한 것도 성급했다.

당장 비판 여론이 일었다. “시행 2년 만에 폐지하면 학부모와 학교의 혼란만 부른다”, “그동안 좋은 학교 만들려고 노력해 온 학교 관계자들은 어쩌란 말이냐”….

서울시교육청이 고교선택제는 수정 보완이 원칙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서면서 논란은 가라앉는 분위기다.

고교선택제는 곽 교육감의 전임자인 공정택 전 교육감이 도입한 것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두 교육감은 교육에 대한 이념이나 철학이 판이하다.

고교선택제가 완벽한 정책은 아닐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수정 보완은 당연하고도 바람직하다. 하지만 교육을 개인이나 집단의 이념을 실험하는 장(場)으로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교육정책이 정치권의 선거 전략으로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이념적 성향을 불문하고 역대 정권은 사교육비 문제만큼은 같은 태도를 취해 왔다. 사교육비 경감을 치적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5공 이후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둔 적은 없다. 입시제도만 안정돼도 정치권이 그토록 목매는 사교육비 문제는 대부분 해결될 것이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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