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모]4·27 재·보선, 강원의 막장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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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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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모 사회부 기자
이인모 사회부 기자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새 정치 드라마 ‘엄기영 vs 최문순’은 방영 초기 강원도민의 마음을 한껏 사로잡았다. 전국구 스타 이광재 주연의 드라마 전편이 흥행에 성공한 데다 새 드라마 역시 그 못지않은 주연급 배우가 더블 캐스팅됐기 때문. 더욱이 전 드라마에서 한창 주가를 높이던 주연 배우의 낙마로 조기 종영된 탓에 후속 드라마에 대한 도민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이를 반영하듯 새 드라마에는 인기 배우가 연일 얼굴을 내비쳤다. 지역 드라마에 좀처럼 모시기 힘들었던 인물들이 앞다퉈 카메오 출연을 자청했을 정도. 카메오란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끌 수 있는 단역 출연자를 말한다. 일부 카메오는 출연 횟수가 늘면서 2, 3회에 한 번꼴로 등장했다.

이처럼 출연진이 중량급 배우로 채워지자 시청률은 고공행진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내용은 일단 뒷전. 강원도민은 도내 전역을 배경으로 한 데다 화려한 출연진에 들뜨기 시작했다. 그동안 인기는 없었지만 장기 방영 중인 드라마 ‘무(無)대접 강원’을 끝낼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한 것.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이 같은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인기 배우들이 출연 중이지만 내용은 ‘막장 드라마’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MBC라는 같은 ‘소속사’ 출신의 배우끼리 맞고발하는 볼썽사나운 장면까지 연출했다. 실제로 욕설이 난무하거나 주먹으로 치고받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두 주인공의 난타전에 도민의 가슴엔 피멍이 들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막장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상당한 시청률을 보이는 반면 이 드라마는 시청률마저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점이다. 배우들이 이른 새벽부터 거리를 돌며 드라마를 홍보하지만 한번 마음을 거둔 시청자는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엄기영과 최문순 두 주인공 가운데 1명은 27일 출연을 끝으로 이 드라마에서 하차한다. 누가 남고 떠날지는 시청자들 몫이다.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가 막판에 이르면서 불법 선거운동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절박함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수위가 지나치다. 1 대 1 싸움에서 중앙당 차원의 패싸움 양상으로 변해가는 것도 씁쓸하다. 도대체 유권자는 안중에나 있는지 의문이 들 뿐이다.

지역의 한 교수가 이번 선거에 대해 내뱉은 한마디가 귓전을 맴돈다.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아요.” 그러나 블랙코미디는 보는 이들에게 웃음이라도 준다. 이건 블랙코미디도 아닌 ‘막장 중의 막장 드라마’일 뿐이다.―춘천에서

이인모 사회부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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