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12>냉이와 씀바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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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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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
밥상에서 봄이 왔음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전령사는 봄나물이다. 그중에서 대표주자는 역시 달래, 냉이, 씀바귀다.

새콤달콤한 달래무침, 밥에다 썩썩 비비는 달래간장, 한 숟가락 떠먹으면 입안에 봄 향기가 가득 퍼지는 냉잇국에 쌉쌀한 맛이 식욕을 자극하는 씀바귀나물까지 떠올리면 벌써 입에 군침이 돈다. 사람들은 그래서 봄나물을 가리켜 아예 보약이라고 했다.

‘산채는 일렀으니 봄나물 캐어먹세/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조선시대 ‘농가월령가’ 중에서 2월 노래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서도 봄나물을 캐는 것이 아니라 ‘본초강목’ 같은 의학서에 있는 약재를 캐오는 것이라고 노래한다. 우리 의학책인 ‘동의보감’에도 씀바귀와 냉이는 약재로 올라있다.

‘동의보감’에 씀바귀는 성질이 차고 맛이 쓴데 몸의 열기를 없애 마음과 정신을 안정시킨다고 했다. 심신을 편하게 하며 춘곤증을 물리쳐 노곤한 봄철에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것이다. 반면에 냉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피를 잘 돌게 해서 간에 좋고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냉이와 씀바귀는 이렇게 성질이 정반대로 옛 사람들은 여러 면에서 둘을 서로 대비되는 봄나물로 꼽았다. 냉이는 군자로 씀바귀는 소인으로 비유했고, 냉이를 지조와 학문의 표상으로 삼은 반면 씀바귀로는 실연의 아픔을 그렸다.

‘시경(詩經)’에 ‘누가 씀바귀를 쓰다고 했나, 달기가 냉이와 같다’는 노래가 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이 옛 정을 그리워하면서 아프고 쓰라린 마음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버림받은 자신의 고통이 씀바귀보다도 더 쓰다는 뜻이다.

냉이
‘시경’의 시대적 배경이 기원전 7세기 무렵인데 실연의 아픔을 왜 하필이면 냉이와 씀바귀에 비유했는지 지금 시각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주로 먹는 봄나물이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변계량도 씀바귀를 구박하는 시를 썼는데 ‘황당한 글 가지고 책 끝에 쓰려 하니/씀바귀가 채소에 섞인 것 같아 부끄럽구나’라고 읊었다.

자신의 글을 낮추면서 씀바귀에 비유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의 씀바귀 구박의 압권은 한자에 보인다. 씀바귀는 한자로 도(도)라고 쓴다. 풀 초(草)와 나머지 여(余)자로 이뤄진 글자다. 그러니까 나물 중에서 좋은 것은 다 고르고 남아있는 여분의 나물이라는 의미다.

막상 먹을 때는 씀바귀의 쓴맛이 몸에 좋다고 칭찬하면서 비유를 할 때는 기껏 실연의 아픔을 상징하거나 버리기 직전의 나물이라고 ‘뒷담화’를 한다.

반면 냉이에 대해서는 칭찬 일색이다.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쓴 ‘산림경제(山林經濟)’에 냉이는 성질이 따뜻해 오장을 조화롭게 한다며 송나라 때 채원정은 냉이를 먹고 높은 학문의 경지를 이뤘다고 했다.

역사책인 ‘송사(宋史)’에 나오는 이야기로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채원정이 냉이를 씹어 먹으면서 주린 배를 달래가며 학문을 닦은 후 주자를 찾아가 제자로 삼아줄 것을 청했다. 그의 학문을 시험한 주자가 “이 사람은 나의 벗이지 제자의 반열에 둘 수 없다”고 말하며 곁에 두고 수시로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냉이와 씀바귀에 담긴 뜻을 새기며 새봄을 맞이하는 것도 나름 의미는 있을 것 같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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