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근형]한국 스키가 언론을 원망해도 되는 이유

  • 동아일보

유근형 스포츠레저부
유근형 스포츠레저부
“알파인 스키에서 여자 2관왕이 나오면 뭐합니까? 평소랑 다를 게 없는데….”

“크로스컨트리에서 첫 금메달이 나왔는데 전화 인터뷰만 했습니다.”

“스키 오리엔티어링 국제 대회에 처음 출전해서 메달까지 따냈는데 사진은 우리가 찍어야 했습니다. 국제 연맹 관계자들한테 민망해 죽겠어요.”

설 연휴가 한창이던 3일과 4일 겨울아시아경기 설상 종목 경기가 열리고 있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는 한국 기자들에 대한 원망을 홀로 감수해야 했다. 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종합 3위 유지의 일등공신이 됐지만 스포트라이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대표팀의 서운함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아시아경기는 행정수도인 아스타나와 제1경제 도시인 알마티에서 분산 개최됐다. 카자흐스탄에서 인기 있는 알파인스키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 밴디 등의 종목은 알마티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메달박스인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피겨 등은 아스타나에서 열렸다.

문제의 발단은 대부분의 한국 취재진이 아스타나에만 있었다는 점이다. 매일 빙판에서 메달이 쏟아지는데 상대적으로 열세인 설상 종목의 현장 취재는 그동안 소홀했던 게 사실. 게다가 아스타나와 알마티는 비행기로 2시간 거리(약 950km)라 이동이 쉽지 않다.

하지만 김선주가 알파인 스키 2관왕에 오르고 크로스컨트리 이채원, 알파인 스키 정동현 등의 선전이 알마티에서 펼쳐지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기자를 비롯해 아스타나에 있던 국내 언론은 전화 취재로 아스타나발 알마티 기사를 생산하는 데 급급했다. 등록 선수가 일본의 10분의 1도 안되는 상황에서 기적 같은 성과를 거둔 설상 종목 관계자들이 섭섭한 감정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기자가 귀하다 보니 알마티에 머문 이틀 동안 총 5개 종목 20여 명의 관계자들을 몰아서 만나야 했다. “아스타나에서 여기까지 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불편한 인사도 받아야 했다.

평창이 2000년대 초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선 이후 쇼트트랙 편중 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지난해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선 이승훈 모태범 이상화 등 빙속 삼총사와 피겨 여왕 김연아가 등장하면서 걱정의 수위는 낮아졌지만 ‘설상 종목에서의 후진성’은 우리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스키의 선전으로 한국은 진정한 겨울스포츠 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600만 스키어를 비롯한 스포츠팬과 언론의 꾸준한 관심이 필요할 때다. 알마티에서 들었던 설상 종목 관계자들의 쓴소리가 다시 나와선 곤란한 까닭이다.

유근형 스포츠레저부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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