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갑영]환율전쟁 파고 서비스업으로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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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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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합의가 체결된 지 25년 만에 또다시 환율전쟁이 재연되고 있다. 1985년 9월 G5(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는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달러화의 절하와 국제수지 불균형의 해소에 합의했다. 당시 불균형의 주범(?)은 일본의 엔화였고 범인을 몰아세운 건 역시 미국이었다. 미국은 그해에만 무려 430억 달러에 이르는 대일 적자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제 간 공조를 앞세운 미국의 위세에 눌려 불과 2년 만에 엔화를 50% 넘게 절상하는 비운(?)을 맞게 됐다. 그 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10년은커녕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플라자합의는 일본 경제에 큰 재앙을 불러온 역사적 사건이 된 셈이다.

2010년 환율전쟁의 무대에는 일본 대신 중국이 주범으로 등장했다. 전선은 G5에서 G20으로 확대되었지만 여전히 세계 두 강대국 G2의 싸움이다.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미국과 칼날을 겨루고 있다. 중국은 그때의 일본처럼 녹록지 않다. 글로벌 위기에서도 고도성장을 지속하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 곳곳에서 안하무인이다. 미국과 강대국의 지속적인 압력에도 위안화 절상에는 별다른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환율논쟁은 세계적 현안으로 부상했지만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컨센서스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플라자합의의 재앙과 외환위기의 비운을 학습한 각국이 선뜻 자국통화의 절상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겉으론 미사여구로 국제 간 공조를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우지만, 누가 감히 자국의 이익을 뒤로하고 세계 경제를 위해 희생하겠다고 나서겠는가.

美-中싸움에 원화절상 추세

미국은 위안화가 25% 이상 절상되어야만 50만 명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무역적자도 크게 줄어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의 입장은 판이하다. 미국 적자의 주범이 위안화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아직도 개발도상국에 불과한 중국을 환율로 압박하는 게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대립 속에 미국은 많게는 1조 달러를 더 풀 것으로 전망된다. 2008년 위기 직후의 긴급 재정지출 확대가 7000억 달러 수준이었음을 상기하면 엄청난 양적 확대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달러화 가치의 하락은 시간문제 아니겠는가.

실제로 중국은 이미 달러화의 하락에 적극 대비하고 있다. 2조6500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달러 이외의 다양한 자산으로 대체하기 위해 금과 원자재 등 실물은 물론 한국과 일본 등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한다. 중국의 손길이 미치는 곳마다 유동성이 급증하고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이 와중에서 우리 원화도 폭등하여 환율이 연일 급락한다.

환율전쟁의 여파는 어디까지 갈까. 결국 양적 확대를 추진하는 달러화는 상당 기간 하락이 불가피하고 위안화의 절상도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 환율은 어차피 외국통화와의 상대가격이므로 기축통화의 양적 확대에 따라 자국통화의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강대국 간의 마찰이 확대되면 보호무역을 자제하자는 G20의 합의는 물 건너가고, 세계 경제의 회복 기조 자체가 큰 위협을 받는다. 또한 기축통화의 폭락에 따른 시장의 불안과 불확실성이 한동안 세계 경제를 짓누르게 될 것이다.

달러화에 연계된 원화의 운명은 안타깝게도 우리 손으로 다스릴 수조차 없는 형국이다. 중앙은행이 미세조정을 시도한다 해도 어떻게 원화 절상의 대세를 바꿀 수 있겠는가. 처량하게도 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가슴 졸여야 하는 새우의 운명을 탓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행여 환율조작국의 누명이라도 쓰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이제는 원고(高)에도 굳건히 견뎌낼 수 있는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일본의 사례를 보라. 플라자합의 이후 최근까지 높은 엔고 속에도 흑자를 유지하지 않는가. 비결은 소재와 부품산업의 경쟁력, 그리고 생산성의 제고에 있다.

제조업 수출 의존 구조 탈피해야

나아가 환율 10원의 등락에도 온 나라가 요동치는 산업구조부터 개선해야 한다. 제조업의 수출에만 지나치게 의존하고, 서비스업 적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수위를 달리는 기형적 구조로 어떻게 선진화를 달성할 수 있겠는가. 지난 10년간 서비스업 적자가 무려 1200억 달러에 이른다. 의료 교육 금융의 규제만 완화해도 교역구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을 그렇게 외치면서도 고용효과가 훨씬 높은 서비스업은 외면하고, 언제까지 제조업 수출에만 매달릴 것인가. 정답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졌지만 파국에 이를 때까지 거들떠보지 않는 정부가 안타깝기만 하다. 긴 안목으로 원화 절상을 극복할 수 있는 선진화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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