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이 지적했고 대다수가 동의한다. 그러나 스스로 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안전불감증을 한탄하고 관련 법규를 제정 또는 개정하며 호들갑을 떨지만 잠시 후면 잊어버리고 또다시 안전불감증에 빠진다. 왜 그럴까.
큰 재난이 발생하면 정치권에서는 법규를 급히 제정 또는 개정한다. 예를 들면 ‘화재보험법’은 1973년의 대연각 화재사건을 계기로, ‘유선 및 도선 사업법’은 1993년의 서해 페리호 사고 때문에, ‘청소년기본법’은 1999년의 씨랜드 화재사고를 계기로 도입했다. 문제는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법이 졸속으로 도입되어 현실을 개선할 만큼 체계적이지 못하고, 국민과 공무원은 법을 준수하고 집행할 의지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은 다시 안전불감증에 빠지고 대형사고가 또 터지고 정치권은 건성으로 법을 재개정하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종의 기원이 진화이듯이 안전불감증의 원인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 조건 아래서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신체와 정신 및 행동을 적응시키고 심지어 환경을 바꾸기까지 한다고 한다. 이 이론을 적용하여 한국인이 안전불감증에 걸린 이유를 분석하면 국내 환경에서는 안전불감증에 걸리는 것이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극대화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사람은 평소에 안전의식이 높다. 대부분의 가정과 업소가 사고에 대비하여 보험에 가입한다. 이유는 그들의 체질이나 국민성이 안전을 중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고로 남에게 준 피해를 철저히 보상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 아래서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극대화하려면 스스로 안전의식을 높이고 보험에 가입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인의 안전불감증의 원인은 사고로 인한 손해의 대부분을 남이 부담해주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로 든 사고의 손해는 대부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및 국민성금으로 보상했다.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는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지지 않았거나, 지더라도 턱없이 가볍게 졌다. 그러므로 안전을 위해 스스로 주의수준을 높이고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적다. 정부가 사고위험이 있는 업소를 단속하지만 실효성이 적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끔 적발되면 벌금을 조금 내는 편이 평소에 안전을 위하여 투자하고 보험에 가입하는 방법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안전불감증을 치료하는 특효약은 사고를 일으킨 가해자에게 형사적 민사적 책임을 묻는 제도를 마련하고 철저히 시행하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이러한 방향으로 법을 개정한 사례가 있다. 1961년 제정된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은 가벼운 과실로 화재를 일으켜 남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법으로 안전불감증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 법은 2007년 8월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고 지난해 5월에 개정되어 이제는 가벼운 과실에 의한 실화책임도 물을 수 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아는 국민이 적고, 알더라도 행동을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정부기관과 전문가들이 음식점 주점 PC방 노래연습장 학원 등 다중이용업소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의 도입을 논의한다고 한다. 다중이용업소로 하여금 화재로 타인에게 끼친 생명과 신체 및 재산상의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고, 의무적으로 화재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번에는 법을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만들어 안전불감증을 탈피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