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소연]한국이라서 안된다는 ‘핑계’

동아일보 입력 2010-09-25 03:00수정 2010-09-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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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나 공상과학영화를 보며 미모의 박사가 되어 우주선에 탑승하는 꿈을 꾸던 꼬마 소연이는 키가 커 가고, 많은 것을 배우고 들으며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태어났다면 모를까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체념했다. 요즘은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참 부끄럽다. 지금의 청소년이나 학생은 그러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강연을 하고 나면 가끔 예전의 나처럼 “이러이러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하겠죠?”라며 미리 체념하는 친구들을 종종 만난다. 그럴 때면 우리나라만이 할 수 있는, 또 거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식으로 생각을 바꾸도록 대답해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지구상에 사는 60억 인구가 모두 다른 얼굴과 성격과 재능을 갖고 살아가듯 지구상에 존재하는 200여 개의 나라도 마찬가지다. 나라마다 다른 영토, 다른 자원, 다른 인구,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 강한 나라라고 여겨지는 모든 나라가 넓은 영토와 많은 자원을 가진 게 아니다. 작지만 강한 나라도 있다. 크고 많은 것을 가졌지만 국민이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도 있다. 운동 종목마다 각기 다른 신체조건으로 챔피언이 되고, 다양한 직업에서 각기 다른 재능으로 최고가 되는 일과 같다.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한 바퀴 도는 90분 중 러시아 상공을 지나는 데는 거의 20분이 걸리는 데 반해 대한민국은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나와 함께 비행했던 러시아 우주인은 대한민국이 그렇게 작은 나라지만 결국 수많은 자동차와 휴대전화로 러시아를 뒤덮었다며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는, 그리고 대한민국이 아니면 안 되는 무언가가 우주 분야에도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우주강국이라 생각되는 나라는 그 나라만의 특성과 환경에 맞게 최선을 다하고 그들만이 가진 것으로 다른 나라와 긴밀한 협력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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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우주인 모임에서였다. 로켓 기술이 국가적으로 민감한 기술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작은 나라가 우주 로켓을 개발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는 점에 모두 수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민감한 기술 문제를 피해서 인터넷으로 일반인에게 판매되는 부품만 가지고 작은 위성을 발사하는 로켓 제작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비록 아주 작은 위성이었지만 가능하긴 했어. 가질 수 없는 기술을 핑계대기보다는 할 수 있는 한에서 일단 해봤지”라고 말했다.

얼마 전 신문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했다. 우주강국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덴마크의 로켓 연구가 2명이 작은 공장에서 로켓을 만들고 1인용 우주캡슐을 제작하고 시험했다. 100km까지 상승한 로켓이 알약 모양의 캡슐과 분리되고 그 안에 탄 사람은 낙하산으로 바다에 내린다. 그 과정에서 아주 잠깐이지만 우주를 체험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여건에서 우주를 체험해 볼 수는 없을까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주에 가려면 미국이나 러시아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이들을 보고서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채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이러저러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탓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대한민국 하면 생각나는 스포츠나 자동차, 정보기술(IT) 산업은 모두가 넉넉하고 충분한 여건 덕에 이룬 결과가 아니다. 대부분은 다른 나라가 생각하기에 열악한 조건에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만든 성과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주개발 분야에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도 언젠가는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아니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이소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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