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역사의 해’ 역사교과서 갈등

동아일보 입력 2010-09-23 20:00수정 2010-09-24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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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역사학계의 ‘불편한 관계’가 장기화되고 있다. 2008년 11월 정부가 좌(左)편향 시비를 불렀던 ‘한국 근현대사’ 고교 교과서에 대해 ‘수정 지시’를 내리자 역사학계 일부는 “역사교육의 자율성 침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정부와 역사학계 사이의 갈등은 갈수록 골이 깊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역사학계의 책임은 없나

정부는 내년부터 고교에서 사용할 ‘한국사’ 교과서의 검정을 최근 마무리했다. 말썽을 일으켰던 고교 ‘한국 근현대사’ 과목은 신설되는 ‘한국사’ 과목으로 편입됐다. 출판사들이 검정 교과서를 제작하게 되면 정부가 선정한 검정 심의위원들의 심사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심의위원에는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한 교수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근현대사 전공학자 중에는 상대적으로 좌파 성향의 인사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전공학자들을 배제하려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을 사고 있다.

역사교과서에 대한 법원의 오락가락 판결도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고법은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저자들이 출판사인 금성출판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출판사의 교과서 수정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금성출판사가 2008년 교과부 측의 ‘수정 지시’를 받아들여 책 내용을 일부 바꿔 출판한 것은 저작인격권 침해가 아니라는 내용이다. 저자들이 출판 계약 당시에 교과부 요청이 있을 경우 수정하겠다고 동의했던 점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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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정부 손을 들어준 서울고법의 판결이 나온 직후 이번엔 서울행정법원이 저자 쪽의 손을 들어준 판결을 내놓았다. 교과부의 ‘수정 지시’에 절차상 잘못이 있었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수정 지시’를 하려면 정식으로 심의 회의를 개최한 뒤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회의를 열지 않은 채 수정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두 판결 모두 교과부의 수정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지 않고 절차상 문제를 따진 것에 불과하지만 정부와 교과서 저자들은 서로 자신들이 옳았다며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올해는 ‘역사의 해’라고 불릴 만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 4·19혁명 50년, 5·18민주화운동 30년, 6·25전쟁 60년, 한일강제병합 100년 등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의 절목(節目)이 일 년 내내 이어졌다. 역사교육의 차원에서 볼 때도 올해는 소중한 해였다.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에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기(好機)를 잘 활용하기는커녕 정부와 역사학계가 서로 등을 돌리는 모습만 보여준 꼴이다.

수준 미달 교과서 스스로 걸러내야

역사교과서가 편향성 시비에 휩싸이고 사회적 논란이 되면 될수록 교과서는 신뢰를 잃고 불신을 받는다. 역사교과서의 위기는 역사교육의 위기, 역사학의 위기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역사적 교훈은 국민을 지혜롭게 만든다는 점에서 요즘과 같은 혼란상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손실이다.

우리의 역사교육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 데는 역사학계에도 책임이 있다. 역사학계 일부에서는 정부가 근현대사 교과서를 수정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학문의 자유’ ‘교육의 자유’를 내세워 정부를 비판한다. 저자의 지적 생산물을 정부가 왜 마음대로 고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의 내용이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로서 자격 미달이다. 대한민국을 향해 돌을 던지는 교과서를 통해 고등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배우고 있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좌편향 역사교과서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사회과학 등 다른 전공학자들이었다. 역사학계 일부에서는 왜 다른 전공자들이 남의 학문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이곳저곳에서 역사교육에 대한 불신이 표출된다면 역사학계 스스로 내부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좌편향 말고도 우리 역사교과서는 과잉 민족주의, ‘무자비’ ‘잔인무도’ ‘광분’ 같은 감정적 표현의 사용 등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나무라려면 우리 교과서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한국사 일변도로 이뤄지는 역사교육도 우리 사회를 조선조 말기의 쇄국적 역사관으로 되돌릴 우려가 있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균형감 있게 이해하도록 배려해야 옳다. 이런 한계들이 역사학계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개선책이 모색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어린 학생들은 역사라고 하면 골치 아픈 표정부터 짓는다. 역사가 대중에게 점점 외면당하는 인상이다. 역사학계가 위기를 타개하려면 닫힌 성(城) 안에서 벗어나야 한다. 열쇠는 상당 부분 역사학계가 쥐고 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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