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돌고 돌아 나온 김황식 총리 카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17일 03시 00분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낳은 ‘청문회형 총리 후보자’라고 할 수 있다. 돌고 돌아 나온 총리 카드여서 의표를 찌르는 신선미는 없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대교체형 총리로 내세운 40대 김태호 후보자가 도덕성 시비로 낙마한 뒤 새 총리 후보자의 제1기준이 도덕성처럼 되어버렸다. 김 후보자는 대법관을 지냈으며 현직 감사원장으로 인사청문회와 국회의 임명동의 절차를 두 번이나 통과한 인물이다. 정식 총리가 되면 역대 총리 가운데 최초의 전남(장성) 출신이어서 야당의 거부감이 약할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을 법하다.

총리 자리를 공석 상태로 오래 놔둘 수는 없지만 도덕성과 정책수행 능력에 대한 검증을 대충 해서는 안 된다. 김 후보자의 경우 도덕성 관련 의혹은 많지 않아 보이나 병역면제 경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대통령도, 여당 대표도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상태에서 총리 후보자까지 병역 면제자이니 국민이 어떻게 볼지 모를 일이다. 병역면제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철저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를 선택한 배경으로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핵심가치로 천명한 ‘공정한 사회’ 구현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공정한 사회’가 감사원장 출신이나 도덕성에 시비가 없는 무난한 인물을 내세운다고 해서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공정성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이 중요하다.

한반도 주변정세의 급변 가능성과 지속적인 성장동력 창출, 양극화 해소 등 국정 전반에 걸쳐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 각부를 총괄해야 하는 총리의 책무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감사원장에 취임하기 전까지 평생 사법부에서 법조문을 따지며 보낸 그가 총리로서 행정 업무에 얼마나 역량을 보여줄지 미지수다. 대통령의 권한이 강력한 우리나라에서 총리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서민정책을 비롯한 각종 현안에서 총리가 소통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분야가 많다. 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야말로 그가 갖고 있는 행정수행 능력을 본격적으로 검증하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운찬 전 총리가 사의(辭意)를 공식 표명한 7월 29일 이후 49일 동안 총리 공백 사태가 계속됐다. 청문회를 무사히 넘긴다 해도 일정상 다음 달 초에나 총리로 임명될 수 있다. 김 후보자가 높아진 검증의 벽을 통과해 정부조직을 조속히 안정시키고 국정의 추진력을 발휘한다면 나라를 위해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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