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리먼 쇼크’ 2년, 그리고 한국

동아닷컴 입력 2010-09-13 20:00수정 2010-09-1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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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5일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다. 독일계 유대인 리먼가(家) 3형제가 1850년 회사를 세운 지 158년 만의 몰락이었다. 베어스턴스는 JP모건체이스에 매각됐고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합병됐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해 겨우 고비를 넘겼다. 미국의 5대 독립 투자은행이 모두 수모를 겪었다.

리먼 파산 직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경제의 기초여건은 튼튼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페어 슈타인브뤼크 독일 재무장관은 “금융위기는 전적으로 미국만의 문제”라고 공언했다. ‘리먼 쇼크’는 이런 주장들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재난은 글로벌 금융위기, 나아가 실물분야까지 포함한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세계의 재난으로 번졌다.

17세기 튤립 거품부터 1990년대 닷컴 거품까지 반복된 ‘탐욕이 만든 경제 거품은 반드시 붕괴한다’는 역사의 교훈은 옳았다. ‘이번에는 다르다’는 주장은 이번에도 허구였다. 작년 12월 타계한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같은 해 6월 “역사야말로 어떤 가설이나 시험보다 더 나은 자료”라며 경제사에 대한 존경과 관심을 촉구했다.

전미(全美)경제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의 이번 경기침체는 2007년 12월 시작돼 3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장기 침체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8일 18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오늘 치러지는 일본의 집권 민주당 대표, 즉 총리 선거 과정에서도 경제 살리기는 주요 이슈의 하나였다. 그리스 스페인 등 ‘지중해 클럽’의 경제위기로 유로화는 2류 통화로 전락할 위험에 처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앞날이 불투명한 선진국과 달리 중국과 인도는 지구촌 경제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세계의 경제서열은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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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는 지옥과 천당을 오간 끝에 일단 승자(勝者)그룹에 편입됐다. 리먼 파산 직후 주가와 원화가치는 폭락했고 그해 4분기 경제성장률 하락폭은 주요 경제국 중 가장 컸다. 반면 올해 성장률은 세계 성장률 전망치 2%대 중반보다 훨씬 높은 6% 안팎으로 예상된다. 증시 시가총액은 2년 10개월 만에 1000조 원을 넘었다. 미국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 등은 공저 ‘위기경제학’에서 “한국은 신흥 경제대국에 포함될 자격이 있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며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BRIC은 한국을 포함한 BRICK이 돼야 할지 모른다”고 썼다.

그렇다고 해외발(發) 위기 때 유난히 충격이 큰 구조적 취약성이 줄었는지는 의문이다. 연세대 정갑영 교수는 “언제나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위험관리를 해야 한다”며 충분한 외환보유액, 대외부채 감축, 은행과 기업의 건실한 재무구조, 재정건전성 확보가 위기관리의 기본이라고 했다.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 강화와 도덕적 해이 방지도 필수적이다.

대출금 상환능력이 취약한 저소득층도 모두 집을 갖게 하겠다는 부시 정권의 인기영합적 정책은 미국을 위기로 몰고 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친(親)서민과 공정한 사회 국정 기조를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부시의 전철(前轍)’을 밟을 위험성만은 경계하라고 권하고 싶다. 경영이 잘되면 과실(果實)을 독차지하고 어려워지면 정부에 손을 내미는 일부 기업의 행태도, 경제와 기업을 졸(卒)로 여기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도 모두 사라져야 할 폐습이다. ‘위기 이후의 세계’에서 한국인의 여권(旅券)이 더 대우받는 나라를 만들려면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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