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윤종구]축구, 하야부사, 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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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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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축구 잔치가 끝났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에 진출한 일본은 말 그대로 뒤집어졌다. 새벽에 도심으로 수백, 수천 명이 몰려나와 소리를 지르고, 경찰 통제에도 아랑곳없이 차도를 가로질러 달리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수십 명이 한꺼번에 강물에 뛰어들고…. 이들이 평소에 그렇게 얌전하던 일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영웅의 귀환’을 맞은 일본은 떠들썩하다. TV는 감독과 선수들을 잇달아 스튜디오로 불러 이야기꽃을 피우고 신문은 월드컵 뒷얘기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느라 바쁘다. 불경기와 취직난, 고령화와 저출산, 불안한 미래 때문에 사회 전체가 활력을 잃은 듯하던 분위기가 반짝 달아올랐다. 귀국을 앞두고 있던 축구대표팀을 향해 일본 언론이 일제히 ‘가슴을 활짝 펴고 돌아오라’고 주문한 것은 23명의 선수뿐만 아니라 ‘잃어버린 20년’ 동안 잔뜩 웅크려온 1억2700만 국민을 향한 메시지였다.

우주탐사선 ‘하야부사(송골매)’는 7년 동안 우주공간 60억 km를 떠돌다 지난달 13일 지구로 귀환했다. 일본의 이번 월드컵 첫 승리 하루 전이었다. 연이은 낭보에 일본 열도는 모처럼 신바람이 났다. 하야부사의 귀환은 머나먼 우주에서 연료 누출과 자세 제어 실패, 통신 두절, 엔진 고장, 수차례의 행방불명이라는 ‘고장 종합세트’를 극복한 승리라는 점에서 더욱 빛났다. 달 이외의 행성에서 우주물질을 채취했을 가능성이 있는 탐사선이 지구로 돌아온 것은 세계 최초다. 세계 최고의 우주기술을 자랑하는 미국도 못한 일이다. 7년 동안 하야부사의 생명력을 유지시킨 이온엔진의 제조회사는 일본 기술의 우수성을 내세우며 해외시장을 다시 두드릴 채비다.

일본 축구대표팀과 하야부사의 공통점은 모진 역경과 끈질긴 집념, 그리고 마침내 이뤄낸 결실이다.

월드컵 개막 직전까지 ‘사상 최약체’ ‘국제적 망신을 당할 것’ ‘전패로 탈락할 것’이란 비판에 시달린 대표팀이었다. 감독과 선수들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월드컵의 성과는 이런 역경을 묵묵히 견디면서 스스로를 단련한 결과이기에 더욱 값졌다.

하야부사가 일본의 희망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이제 끝났다”고 절망했지만 7년 동안이나 포기하지 않고 매달린 몇몇 과학자의 끈기 덕분이다. 되돌아보면 우주를 향한 일본의 끈기는 진작부터 대단했다. 10여 년 전 100% 국산 기술로 로켓을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볼트와 나사 하나까지 ‘메이드 인 저팬’을 고집하는 바람에 100억 엔에 이르는 추가 비용을 감수했던 일본이다. 1960년대엔 연속 4차례나 로켓 발사에 실패하고도 끈질기게 우주개발에 매달린 끝에 고난도로 분류되는 우주도킹 기술 등에선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일본 축구대표팀과 하야부사는 실패와 절망을 견디고 극복해야 더욱 단단해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원래 끈기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한국, 한국인이 아니었나 싶다. 좁은 국토에 자원도 없고 인구도 많지 않은 한국을 그나마 이만큼 끌어올린 것은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열정 덕분이라고 자부해 왔다. 단편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잊을 만하면 전해지는 유명인의 자살 소식에 ‘한국 사람들의 끈기가 떨어진 게 아니냐’는 일본 사람들의 평을 보고 새삼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등을 돌릴 때 7년을 한결같이 매달려 기적을 만들고,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절망적 상황에서 이 악물고 스스로를 다잡아 온 국민의 희망으로 부활하는 끈기가 아직 우리에게도 남아 있을까 자문해 본다.

윤종구 도쿄특파원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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