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선희]한국문학의 새 희망 ‘문단 밖 대중작가’

  • 입력 2009년 9월 17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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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안우안’의 에쿠니 가오리(일본),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의 기욤 뮈소(프랑스), ‘유성의 인연’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일본)….

한국에서 인기 있는 외국 작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장르 문학적 요소를 차용해 가볍고 쉽게 읽히면서도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작품들을 쓴다는 점이다. 폭넓은 독자들과 호흡한다는 의미에서 ‘대중작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중간문학’으로 불리기도 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하기 때문에’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빅히트작들도 그런 작품들이다.

이 분야에 대응되는 국내 문학은 사실상 공백 상태다. 등단 제도라는 독특한 절차를 둔 한국문학에서는 신춘문예나 문예지 추천으로 대표되는 ‘공식’ 통로를 거치지 않은 ‘문단 밖 작가’들이 활성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하응백 씨는 “2만∼3만 부씩 나가던 국내 작품들이 외국문학으로 대체된 건 소재 발굴이나 글쓰기 방법에 있어서 젊은 독자의 관심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 ‘타워’의 배명훈, ‘절망의 구’를 쓴 김이환, ‘신문물검역소’의 강지영 등 차세대 대중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 낯선 작가들에겐 특징이 있다. 우선 ‘장르 문학적 특성이나 마니아층을 넘어 광범위한 독자를 끌어안는다는 점’(노블마인 채영희 대표)이다. ‘다빈치 코드’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에 오른 댄 브라운이 그런 경우다. 인문 사회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배명훈의 SF, 코미디와 로맨스를 혼합한 강지영의 시대물이 혼종적 글쓰기라는 점에서 브라운의 스타일과 닮았다.

‘문단의 순수 등단 절차 대신 장르문학 단편선이나 웹진으로 필력을 검증받은 작가’(시작 이영희 대표)라는 점도 특징이다. 장편을 내기 전부터 독자들과 호흡하며 글쓰기 역량을 보여준 덕분이다.

이들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도 온라인 독자의 취향에 맞춰 ‘오늘의 문학’ 코너에서 대중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시장도 반기고 있다. ‘타워’ ‘절망의 구’는 1만 부가량 나갔고 ‘신문물검역소’는 출간 2주 만에 증쇄에 들어갔다. 일본이나 영미 작품 번역에 치중했던 국내 장르문학 출판사들도 잠재력 있는 대중작가의 신작을 준비하는 곳이 많다.

대중작가들은 아직은 국내 문학비평의 대상에서 소외되어 있고 작가군 형성도 초기 단계다. 하지만 최근 추세대로라면 외국문학의 국내 출판계 잠식을 대체할 대형 대중작가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듯하다.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오쿠다 히데오도 기대해 볼 만하지 않을까.

박선희 문화부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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