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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1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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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옛날 그릇을 그대로 본떠 만들어 팔아도 문제가 없을지 모르지만 전통을 우려먹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대에 맞는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도자기 사업의 앞날 자체가 불투명합니다.”》
‘밥상 한류’ 꿈꾸는 고수
이 책은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와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문답으로 구성됐다. 최 교수가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도모하는 고수들을 찾아 나선 ‘우리 문화 세계화의 고수를 찾아서’ 시리즈의 첫 성과물이다. 최 교수는 “조 회장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러한 ‘고수’들을 소개하면 한국 문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집필 취지를 밝혔다.
책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60여 년에 이르는 조 회장의 생애와 프로필을 따라간다. 5·16군사정변 때 부친이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집안이 풍비박산나면서 어려웠던 유년 시절, 고학으로 대학을 마치고 해외 무역에 뛰어들어 거액을 벌었으나 어머니의 강압으로 가업(도자기 제조)을 잇게 된 일화 등이 대화체로 정리됐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술술 넘어가는 재미가 있고, 질문자인 최 교수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음식의 세계화가 왜 필요한 거죠?” 등 적극적으로 조 회장의 대답을 끌어내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이야기는 일본에 도자기를 수출해 성공을 거둔 조 회장이 음식으로 보폭을 넓힌 대목으로 이어진다. 그가 음식에 관심을 둔 것은 고교 시절을 보낸 일본에서, 음식이 문화상품으로 계발되고 발전된 것을 보고 받은 깊은 인상 때문이다. 조 회장은 책에서 “외국인들이 일본 식당에 가면 음식만 먹는 게 아니라 식사 예법과 술 문화, 다도(茶道)를 배우고, 일본 음악이나 방에 걸린 그림에 대해서도 익히게 된다”고 말한다.
조 회장은 “문화란 여러 요소가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 어느 하나만 골라 그것만 발전시킨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며 “음식이나 그릇 등을 세계에 내다 팔 때도 그릇 하나에 그치지 말고 우리 문화를 함께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취지로 그는 강남에 ‘가온’이라는 음식점을 냈다. ‘가온’에서 개발한 홍계탕, 전복갈비찜, 전통 증류식 소주 ‘화요’ 등 전통 음식은 좋은 반응을 거뒀다.
두 사람의 대화는 때때로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기도 한다. 최 교수는 “수십만 원에 이르는 홍계탕 같은 요리는 소수 계층만을 위한 문화가 아니냐”며 조 회장의 ‘자랑’을 막기도 한다. 경력 10년 이상 된 도공들을 모아 만든 생활 식기용 고급 도자기라고 하지만, 접시 하나가 수십만 원에 이르다 보니 혼수용 자기라는 비판도 많았다. 조 회장은 “문화를 팔려면 먼저 특수층 문화로 끌어올리고 천천히 대중화해야 한다”며 응수한다.
음식에 대한 쏠쏠한 정보도 많다. ‘너비아니’를 만들 때 숯불에 구웠다가 급히 물에 담그기를 세 번 반복한 뒤 기름장에 발라 다시 구우면 육질이 연해진다든지, 강한 숯불로 고기의 겉부분을 익힌 뒤, 약한 불로 다시 천천히 구우면 육즙이 보존돼 고기의 맛이 좋아진다는 점 등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음식 술 도자기 등 우리가 문화상품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재가 많은 점에 놀라고, 그것을 계발하기 위해 20여 년을 헌신해 온 조 회장의 집념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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