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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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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갖기 전 경남 진해로 벚꽃놀이를 갔던 추억 때문이다. TV로 벚꽃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던 전 씨는 올해 용기를 냈다. 벚꽃 축제를 보기 위해 서울에서 진해까지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전 씨의 소박한 꿈은 현실의 벽 앞에 이내 무너졌다. 휠체어로 이동하려면 KTX로 경남 밀양까지 간 뒤 진해로 가는 새마을호 열차로 갈아타라는 코레일 상담원의 말을 믿은 게 화근이었다.
막상 밀양에 도착하자 새마을호 열차의 출입문 폭은 1m도 안 돼 휠체어가 통과할 수 없었다. 전 씨는 10일 코레일 직원과 하루 종일 실랑이만 벌이다 서울로 되돌아왔다. 전 씨와 함께 난생 처음 여행에 나섰던 동료 장애인 4명도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여행길이 아니라도 장애인들에게 외출은 고난의 연속이다.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는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계단을 오르는 행인 사이에 불편한 만남이 매일같이 연출된다.
폭이 2.5m밖에 안 되는 계단에 리프트가 설치돼 있어 리프트가 움직이는 동안 행인들은 한 줄로 비좁게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리프트에 탄 장애인은 휠체어가 그야말로 가시방석이다.
비장애인이 10초면 오가는 길이 5m의 계단도 장애인에게는 30분이 걸려도 못 가는 장거리 코스다.
역무원을 호출해 리프트를 작동시키는 데만 최소 15분 정도가 걸리는 데다 중간에 고장이라도 나면 리프트에 갇힌 채 하염없이 공중에 떠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전동휠체어가 늘어나면서 고장이 더 잦아졌다.
장애인을 차별한 경우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11일부터 시행됐지만 현장은 아직 묵묵부답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나 경사길 등 장애인용 시설은 예전보다 늘었다지만 장애인이 체감하기엔 갈 길이 멀다.
봄의 절정인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한 시민운동가는 “이동의 제약 때문에 장애인들에게 장애인의 날 기념집회에 와달라고 부탁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비켜 가면 벽이 되고, 다가가면 하나 된다’는 장애인의 날 구호가 무색하다. 벚꽃이 피는 이 계절은 장애인들에게 여전히 잔인하다.
신광영 사회부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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