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효림]증권사, 신뢰 선점하려면 ‘매도’도 권하라

  • 입력 2008년 2월 10일 02시 52분


“누가 목숨을 걸고 특정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를 쓰겠어요. 기업은 물론이고 투자자들도 질색을 하는데….”

최근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투자보고서와 관련해 사석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그는 “증권사가 매도권유 보고서를 내면 뉴스가 되는 현실”이라며 답답해했다.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 증권사 투자보고서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투자에는 돈을 넣을 때와 뺄 때가 있는 법이지만 증권사 보고서에 ‘팔라’는 조언은 없기 때문이다.

투자보고서에 대한 불신은 ‘개미투자자’들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국증권업협회가 자산운용사, 증권사, 보험사의 주식운용 담당자 1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증권사 연구원의 종목 추천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증권사 주식운용 담당자의 비율은 28.6%로 보험사(19.0%) 자산운용사(16.3%)의 비율보다 높았다. 추천 종목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도 증권사 주식운용 담당자의 비율이 자산운용사와 보험사에 비해 낮았다. 증권사가 자기 보고서를 불신하며, 그 강도도 외부인보다 강하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증권사의 능력부족 탓이 아니다. 소신 있는 보고서를 쓰기 힘든 풍토 때문이다. 지난해 1월 한 연구원은 특정 주식을 ‘팔라’는 보고서를 쓴 후 투자자들의 욕설과 협박 전화 때문에 한동안 출근을 못 했다. 매도 보고서를 쓸 경우 해당 기업의 자료를 더는 확보하기 어렵고, 부정적 전망이 틀리면 증권업계를 떠날 각오까지 해야 한다.

새해 들어 증권사들은 ‘단순한 매매중개에서 벗어나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앞 다퉈 밝혔다. 그러나 자기도 안 믿는 보고서를 내는 증권사가 IB를 표방해본들 목돈을 맡길 투자자가 얼마나 될까.

사실 중개 분야에서는 증권사들이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 그래서 선진국 증권사들은 신뢰도 높은 분석으로 투자자를 유인한다. 대상 기업이 세계적 업체일지라도 실적악화 가능성이 높아지면 주저 없이 경고 보고서를 낸다.

어떻게 보면 ‘사라’ 권유만 횡행하는 국내 현실에서 ‘팔라 권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신뢰를 선점하는 증권사는 최근과 같은 침체장에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손효림 경제부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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