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한경직목사의 신앙은]성경에 충실한 '열린 보수주의'

  • 입력 2000년 4월 20일 19시 59분


한경직목사의 신앙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열린 보수주의’ 혹은 ‘건전한 보수주의’라고 할 수 있다.

한목사는 평생 이같은 신앙적 입장을 견지했으며 그의 신앙적입장이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한목사의 교리적 입장은 한국교회의 표준적 입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그는 한 교회의 개척자를 넘어서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교계의 정신적인 지도자이기도 했다.

한목사의 신학적입장인 ‘열린 보수주의’는 성경에 대한 입장차이로 다른 주의와 구분된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긴 갈등의 시간을 겪었다. 그 갈등속에는 성경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태도의 차이가 있었다. ‘자유주의 신신학’과 ‘보수주의’간의 대결이 그것이다. ‘자유주의 신신학’은 기독교의 절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측면이 있다. ‘자유주의 신신학’은 인간의 판단 기준을 인간의 체험과 이성에 둔다. 이에따라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에도 의심을 품는 측면이 있다.

이에비해 ‘보수주의’는 인간의 모든 판단기준을 성경에 근거한다. 또한 기독교의 절대성에 충실하게 동조한다. ‘보수주의’는 다시 ‘막힌 보수’와 ‘열린 보수’로 나뉜다. ‘막힌 보수’는 성경을 문자그대로 해석하는 입장이며 ‘열린 보수’는 문자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성경의 함축적인 의미에도 주목하는 입장이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성경에 대한 이같은 입장 때문에 크게 분열되었고 1950년대에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예수교장로회와 자유주의 신신학적인 입장을 지닌 기독교장로회로 양분되었다. 예수교장로회는 또한 성경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예수교장로회 통합’과 ‘예수교장로회 합동’측으로 갈리었다.

한목사는 이같은 갈등의 시간속에서 줄곧 ‘예수교장로회 통합’측에 속해 ‘열린 보수’의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교회내부에서 갈등이 있을 때마다 성경에 근거해서 판단했으며 칼빈과 루터 등의 예를 따라 처신했다. 성경과 기독교적 전통이 그의 판단기준이었다.

필자는 한목사가 장로회신학대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학장으로 오랫동안 봉사했다.

이 기간 동안에 한목사의 입장을 따라 장로회신학대의 신학적입장이 정해진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그리고 이같은 입장은 국내 교회에 전파됐다.

그는 교회분열의 시기에 “예수안에서 하나가 되자”는 교회일치운동을 줄기차게 펼쳐나갔다.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교회일치운동을 벌이면서 하나님의 큰 사랑안에서 모두가 분열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 그의 생애에서도 중요한 활동이다. 그는 언제나 어느 교파에도 치우치지 않고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토대로 비판과 보수를 지혜롭게 수용하면서 건전한 복음주의적 신학을 발전시키는데 노력했다.

그는 이같은 입장을 바탕으로 ‘선교’ ‘교육’ ‘봉사’를 자신의 핵심사업으로 꼽았다. 그는 이러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이끌기위해서는 우선 교회가 성장해야한다는 입장을 가졌다. 한목사는 이같은 확고한 의식하에 영락교회를 성장시키기위해 노력했다. 그는 이러한 과정에서 ‘겸손’ ‘봉사정신’ ‘청빈’을 늘 실천했다. 목회자들이 한목사에게서 본받아야할 점은 바로 이러한 점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한목사는 우리민족의 비전을 이야기하면서 한민족의 통일을 늘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적인 통일에 우리민족의 미래를 맡기기 전에 기독교의 ‘사랑’으로 먼저 통일운동을 펼쳐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기독교가 더 크게 발전해야한다고 믿었다.

애국자로서 교회지도자로서 큰 뜻을 펼친 한경직목사는 한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기독신앙인이다.

이종성(한국기독교학술원장)

▼한경직목사 어록▼

“기독교가 아니라고 해서 멸시하거나 충돌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는 개신교를 믿는 나라로 발전하리라고 봅니다”

(1984년 10월 한국개신교100주년사업협의회 총재 기자회견)

“목회자는 돈과 여자와 검약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삶을 따라 사는 목사라면 가난해야 합니다. 일부 대도시교회 목사의 호화스런 생활은 잘못된 것입니다”

(1984년 한 일간지 인터뷰)

“먼저 나는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나는 신사참배를 했습니다. 이런 죄인을 하나님이 사랑하고 축복해 주셔서 한국교회를 위해 일하도록 이 상을 주셨습니다”

(1992년 6월18일 템플턴상 수상기념 축하예배 인사말중)

“백두산의 튼튼한 소나무로 북녘 고향땅에 교회지어 예배드리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1997년 생신을 맞아 한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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