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선동렬의 '국보급' 은퇴

  • 입력 1999년 11월 22일 20시 15분


▽선동렬이란 이름 앞에는 늘 수식어가 붙었다. ‘국보급 투수’ ‘국민투수’ ‘무등산 폭격기’ ‘나고야의 태양’ ‘나고야의 수호신’…. 어울리지 않는 게 없다. 유명인사나 권력자의 족적이 미화되는 게 상례이지만 선동렬에 대한 수식어를 그렇게 볼 사람은 없다. ‘선동렬’이란 이름 자체가 ‘최고’의 대명사일 만큼 그는 야구를 했다. 선동렬이 22일 은퇴를 발표, 그를 사랑해온 팬을 아쉽게 했다.

▽선동렬의 선수생활을 더듬어보기는 기록만으로도 한참 걸린다. 그는 고려대 2년 때 벌써 미국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았다. 세계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가 됐기 때문. 95년 프로야구단 해태에 입단한 그는 한국야구 투수부문 기록을 차례로 갈아치웠다. 해태에서의 11년간 세운 기록은 평균자책1위 8차례, 다승1위 4차례, 구원1위 2차례 등등. 팀의 우승을 이끌기도 6차례. 특히 투수의 꿈인 0점대의 평균자책을 3번이나 기록했다.

▽그가 한국프로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일본무대에 선 것은 96년. 한국에서는 더 이상 도전할 부문도 없었기에 팬도 그의 일본행을 지원했다. 그는 주니치 팀 유니폼을 입은 첫해엔 5승1패3세이브로 다소 주춤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마무리투수로 거듭나 2년 연속 30세이브포인트를 달성했다. 올해에는 팀의 센트럴리그 우승에 한 몫을 했다. 팀으로서는 11년만의 경사였다.

▽선동렬의 은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는 사실 1년간의 선수생활 연장을 원했다. 해태와 주니치 구단의 협상이 원만치 않아 은퇴발표를 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일부 팬이 해태를 질책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랫동안 야구로 우리를 시원하게 해줬고 또 어려운 이웃과 후배를 도와주는 넉넉한 마음을 보여준 그는 ‘정상에서 은퇴’라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그것만해도 상쾌하지 않은가. ‘선동렬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그의 앞날을 축복하자.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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