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현 “‘웃는남자’, 한국 창작뮤지컬이라 자랑스럽다”

  • 뉴시스
  • 입력 2020년 1월 13일 0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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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웬플렌 역에 합류한 규현, 맑은 목소리 인상적
3월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웃는 남자’ 초연은 처음으로 뮤지컬 그랜드슬램을 달성했죠. 이후에도 모든 스태프들이 안주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생각했죠. ‘웃는 남자’가 한국 뮤지컬이어서 자랑스러워요.”

지난 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웃는 남자’의 두 번째 시즌 첫날 공연이 마친 뒤 무대에 오른 EMK뮤지컬컴퍼니의 엄홍현 프로듀서 얼굴에는 감격과 함께 뿌듯함이 묻어 있었다.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엘리자벳, 황태자 루돌프(더 라스트 키스), 레베카, 팬텀, 마타하리,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 2009년 설립된 EMK뮤지컬컴퍼니는 지난 10년간 뮤지컬업계에서 가장 성공한 컴퍼니다. 국내 유럽 중세풍의 블록버스터 뮤지컬 열풍을 이끈 회사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마타하리, 웃는 남자, 엑스칼리버 등 대형 국산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데 열정을 쏟아왔다. 그 중에서도 웃는 남자는 엄 대표 개인에게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웃는 남자’는 ‘레 미제라블’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겸 극작가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이 바탕. EMK가 2013년부터 5년 간 공을 들여온 작품으로 제작비 175억원이 투입됐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주인공 그웬플렌은 비슷한 주제의 작품들 속 주인공과 비교해 가장 순수하고 서정적이다. 호기롭게 앞장서기보다 투명함으로 뮤지컬의 주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기여한다.

그웬플렌은 엄 대표의 개인적인 부분이 가장 투영된 인물로 알려졌다. 김지원 부대표(EMK인터내셔널 대표)와 세운 EMK로서 실패한 적 없는 엄 대표는 이 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기 전에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2006년 두 사람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함께 차린 다인컬쳐가 선보인 체코 뮤지컬 ‘드라큘라’가 흥행에 참패한 것이다. 20억원을 손해보며 빚더미에 앉았다. 이후 쌓은 각종 노하우를 쏟아 부은 ‘웃는 남자’는 2018년 7월 초연 이후 우리나라 4개의 뮤지컬 시상식에서 모두 작품상을 휩쓰는 ‘그랜드 슬램’을 이뤘다. 이에 힘입어 1년6개월 만에 재연을 올렸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재작년에 초연을 이곳에서 올렸어요.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캐스트로 함께 찾아올 수 있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EMK는 새 시즌의 개막 당일 공연이 끝난 뒤 배우, 스태프들이 무대에 올라 작업 과정의 소회와 남은 공연에 대한 기대를 전하는 것이 관례처럼 됐다. 뮤지컬계에서는 드문 풍경이라 관객들 사이에서도 하나의 이벤트가 됐다. 그래서 EMK의 개막 공연 티켓팅은 더욱 치열하다.

이번 시즌에 새로운 캐스트로 ‘웃는 남자’ 타이틀롤을 맡은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겸 뮤지컬배우 규현이 이날 무대에 올랐다. 그는 “초연을 여러분처럼 객석에서 봤어요. 이렇게 멋진 작품이 한국 창작 작품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놀랍다”면서 “이 무대에 제가 서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고 했다.

극은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아물지 않는 잔혹한 미소를 갖게 된 그웬플렌의 여정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성찰한다.

규현의 그웬플렌은 그의 맑은 목소리 덕에 한껏 더 서정성을 입었다. ‘모차르트!’ ‘베르테르’ 등 규현은 주로 순수한 캐릭터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왔는데 그웬플렌의 드라마틱한 여정에서는 한껏 날카로움도 품었다. ‘웃는남자’는 지난해 군 복무를 마친 규현의 뮤지컬 복귀작이다. 올해 다른 뮤지컬 출연도 예정됐다.

넘버는 ‘지킬앤하이드’로 유명한 프랭크 와일드혼이 작곡했다. 그의 음악에는 한국 대중음악을 연상케 하는 ‘뽕끼’가 다분한데 ‘웃는 남자’에서는 좀 더 모던해졌다. 아이리시풍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멜로디와 리듬은 적절하게 감성을 충동질한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무대 위에 올라 노랫말로는 표현을 할 수 없는 것을 연주로 공감케 한다.

이번에 순수한 영혼을 지닌 데아 역에 역시 새로 합류한 강혜인도 본인 역을 충분히 해낸다. 그웬플렌과 데아의 양부로 듬직한 버팀목이 된 ‘우르수스’ 역의 양준모, 팜 파탈 ‘조시아나 공작부인’ 역의 신영숙 등 초연 배우들도 제몫을 감당한다.

뮤지컬시장의 세계 흐름은 무대 세트 제작에 드는 비용을 줄이려고 영상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가 제작한 대형 무대는 작품의 배경인 17세기 영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압도적이다.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가 탄 배가 바다에 침몰하는 초반부터 극의 중심인 유랑극단의 풍경, 화려한 정원과 궁전은 곧 황홀경이다. 눈이 먼 여주인공 ‘데아’와 유랑극단 배우들이 강가에서 물을 튕기며 노는 모습을 무대 위에 형상화한 장면은 서정성의 극치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그웬플렌의 찢어진 입을 형상화한 모티브가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반복된다는 점이다. 극을 열고 닫는 무대 전체 가림막을 시작으로 그웬플렌이 공작의 자리를 스스로 박차는 의회에서의 모습까지, 그웬플렌의 입꼬리 형상은 다양하게 변모되며 극의 메시지와 무대에 자연스럽게 일관성을 부여한다.

로버트 조핸슨 연출은 ‘웃는 남자’가 위고의 다른 작품인 ‘레 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가장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인 조커의 영감이 됐다는 점을 특기했다. 그러면서 “그웬플렌은 조커와 다르게 악하지 않다. 순수하고 착하며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핸슨 연출은 “이야기의 중심에는 그윈플렌과 앞이 보이지 않지만 순수한 데아 그리고 이들의 아버지가 된 곰 같은 인간 우르수스가 있다”면서 “이 세 명의 인물은 어떤 가족보다도 가장 감동적인 가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혈연으로 엮이지 않은 세 사람의 사랑은 이 시대에 대안 가족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웬플렌 역에는 규현 외에 보컬그룹 SG워너비 이석훈, 뮤지컬배우 박강현, 그룹 ‘엑소’ 수호가 캐스팅됐다. 3월1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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