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캥거루에서 패러사이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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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1월 10일 14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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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섭의 TREND INSIGHT



부모로부터 물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집에 얹혀사는 사람들을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캥거루족보다 더 독한 표현으로 패러사이트 싱글이란 말이 있다. 패러사이트(Parasite)는 기생충을 의미한다. 20대가 부모에게 얹혀살면 캥거루지만, 30이 넘어서, 심지어 40에 가깝거나 넘어서도 얹혀살면 그건 패러사이트다. 패러사이트 싱글은 부모에게 얹혀살면서 식비나 주거비, 생활비 등을 부모에게 전가한다. 경제적 지원만 받는 게 아니라 밥도, 청소도, 세탁도 다 의존하는 것이다. 어릴 때 부모에게 돌봄을 받는 것을 나이 들어서도 그대로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일자리를 가지고 돈을 벌지만 그 돈은 자신을 위해서만 쓴다. 어떻게 보면 부모의 내리사랑을 이용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패러사이트 싱글, 기생독신(寄生獨身)이란 표현은 일본에서 1990년대 말부터 등장했다. 사실 이때가 히키코모리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고 불황이 본격화된 시기기도 하다. 캥거루족이 부모의 그늘 아래에 있는 나약하고 무능한 사람의 이미지라면, 패러사이트 싱글은 자신의 독신 생활을 부모의 집에 얹혀살면서 누리는 이기적인 사람의 이미지다. 자식의 편의이자 이기심 때문에 부모의 부담은 더 커져간다.

재미있는 건 이런 현상이 전 세계적이란 것이고, 나라마다 이들을 부르는 명칭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부메랑 키드(boomerang kids)라고 하는데,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취업이 어려워지고 집값이 오르면서 등장한 말이다. 미국에서는 ‘청소년의 사고와 말투를 따라하는 어른’이란 의미로 트윅스터(twixter)라는 표현도 쓴다. 애도 어른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의 재산을 축내는 이들을 컨라오(啃老)족이라 부른다. 영국에서는 부모의 퇴직 연금을 갉아먹는 다는 의미로 키퍼스(kippers : kids in parents poc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라고 부르고, 프랑스에서는 부모에게 달라붙어 사는 아들을 다룬 코미디 영화 제목에서 유래한 탕기(tanguy)라는 표현을 쓴다. 이탈리아에서는 3040대가 되어서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이들을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사는 마마보이라는 의미로 맘모네(mammone)라 부르거나 쓸모없는 큰 아이라는 밤보치오니(bamboccioni) 라는 말도 쓴다. 독일에서는 알에서 부화한 뒤에도 둥지를 떠나지 않고 어미새에게 의존하는 새를 뜻하는 네스트호커(Nesthocker)라는 말을 쓴다. 부모에게 얹혀 사는 무능한 성인들은 그야말로 전 세계적 보편현상인 셈이다.

한국사회는 성인이 된 자식이 부모와 같이 사는 것에 관대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하던 것과 달리 우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기본이고 결혼하기 전까지 같이 사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길어진 노후는 한국 부모들의 생각마저 바꾸기에 이르렀다.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식들이 오히려 당당하다보니 이들을 부르는 표현들은 모두 부정적인 것 일색이다. 과거엔 내리사랑으로 감싸거나 안쓰러운 존재로 여겼다면 이제 캥거루들은 불편한 존재다.

심지어 요즘 한국에선 리터루(Returoo)족도 증가했다. 리터루는 Return+Kangaroo, 즉 결혼을 위해 독립했던 자녀가 다시 부모의 집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맞벌이 하는 젊은 부부들이 부모에게 집과 자녀양육을 의존하러 부모 집으로 들어오는 건데, 이 상황에서 중대형 아파트 수요가 급증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5년 전용 85㎡를 초과하는 아파트 거래량은 9만5972건으로 전년 대비 20.9% 증가했다. 2014년에는 전년 대비 23.7% 증가했고, 2013년에는 전년대비 12.5% 증가했다. 3년 연속 중대형 평형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2015년 수도권 5인 이상 가구가 2013년 대비 6.75%(4만2,654가구)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놨지만, 실제는 2.57%(1만7,949가구)가 감소하는 데 그쳤다. 전세난 심화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세대통합 거주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리터루족의 증가가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녀 세대를 늘린 셈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게 아니라 부모에게 얹혀사는 자녀 세대지만 말이다.

덕분에 3대가 함께 사는 집을 보는 게 더 쉬워졌다. 핵가족이 1980년대 서울에서 촉발되었는데, 리터루족도 서울에서 촉발된다. 얼핏 보면 노부모를 모시고 사는, 아이를 둔 젊은 맞벌이 부부처럼 보이고 효도하는 기특한 3040 부부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경제적 이유 때문에 집을 합친 리터루족이 대부분이다.

캥거루건, 리터루건, 패러사이트건 뭐건 간에 지금 한국에서는 2030, 아니 40대까지도 자기 밥벌이 하면서 자기 집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산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노인들이 자기 노후대비도 버거운데 자식들까지 챙겨야 하니 한국 노인들의 빈곤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일 수밖에. 이제 개인이 각자의 부모를 챙기고 자식을 챙기는 시대는 끝났다. 복지가 중요한 이유다. 전 세계적으로 기본임금 문제가 계속 제기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산업의 진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대, 로봇이 일자리를 대체해가는 시대, 산업은 성장해도 고용이 담보되지 않는 시대, 그 산업조차도 성장은커녕 경기불황에 갇혀있는 시대일수록 함께 살아보자는 트렌드는 부상할 수밖에 없다. 캥거루족은 더 는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며, 저서로는 <라이프트렌드 2016: 그들의 은밀한 취향> <라이프 트렌드 2015: 가면을 쓴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14: 그녀의 작은 사치> <완벽한 싱글>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트렌드 히치하이킹> 등이 있다.
#캥거루족#패러사이트#매거진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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