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살인마·사이코패스… 괴물은 어떻게 태어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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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나를 이해한다고 했다/마르크 베네케, 리디아 베네케 지음·김희상 옮김/504쪽·1만7000원·알마

미국의 연쇄 살인범 테드 번디가 1989년 사형 집행 전날 기독교 단체 관계자에게 “10대 시절 포르노를 자주 봐서 살인범이 됐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는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였지만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기도하듯 모은 두 손으로 가리기도 했다. 알마 제공
미국의 연쇄 살인범 테드 번디가 1989년 사형 집행 전날 기독교 단체 관계자에게 “10대 시절 포르노를 자주 봐서 살인범이 됐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는 능수능란한 거짓말쟁이였지만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기도하듯 모은 두 손으로 가리기도 했다. 알마 제공
 책 제목은 1992년부터 7년에 걸쳐 소년 300여 명을 살해한 콜롬비아의 연쇄살인마 루이스 알프레도 가라비토가 과학수사 전문가인 저자 마르크 베네케에게 건넨 성경책에 쓴 말이다. 그는 “인간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도 했다.

 연쇄살인마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분석은 할 수 있다. 책은 마르크 베네케와 심리학자인 그의 아내가 쓴 범죄 심리 보고서다.

 어떤 연쇄살인범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읽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그 능력으로 상대를 조종한다. 미국에서 여성 35∼60명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살인마 테드 번디(1946∼1989)는 법정에서 스스로를 산뜻한 이미지의 청년으로 연출해 사법당국과 미디어를 현혹했다. 사형을 선고받은 뒤에도 희생자와 시신 유기 장소가 모두 밝혀질 때까지는 전기의자에 앉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자신이 저지른 범죄와 살인의 세부적인 사항을 수사 당국에 조금씩 흘렸다. 그의 계획은 실제 9년 동안 먹혀들었다.

 그는 형 집행 전날까지도 보수적 기독교 단체의 창설자를 불러 “포르노를 보는 바람에 살인범이 됐다”는 거짓진술을 하면서 자신이 포르노와의 싸움에서 쓸모가 많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처럼 꾸며대기도 했다.

 연쇄살인마 잭 운터베거(1950∼1994)도 그런 사이코패스다. 독일 출신인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벌인 첫 살인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감옥에서 글쓰기에 매달려 작가가 된다.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 책이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연극이 오스트리아의 무대에서 성황리에 공연됐다. 그는 소설과 시, 라디오방송 원고도 썼다. 이후 유명인사들이 포함된 자신의 지지자들이 석방운동을 펼치게 했고, 수감 16년 만에 형 집행이 정지돼 석방된다.

 운터베거는 이후 낭독회를 열고, 기자로 일하며 팬을 거느리지만 빈과 미국 로스앤젤레스, 체코의 프라하에서 연쇄살인을 벌이다 다시 체포된다. 저자는 “운터베거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할 줄 모르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탓에 도움이 될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사로잡아 원하는 대로 이용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마들은 형량을 경감받으려 살인을 부추기는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76, 1977년 뉴욕에서 6명을 살해한 데이비드 버코위츠는 전형적인 반사회적 성향으로 여성을 향한 증오에 범행을 했다. 잡히기 전 그는 경찰에게 편지를 써서 ‘샘(Sam)’이 자신에게 살인을 저지르도록 충동질한다고 썼다. 잡힌 뒤에는 옛 이웃 샘이 키우던 개가 악령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살인을 명령했다고 주장했지만 정신 감정 결과 날조한 이야기임이 드러났다.

 콜롬비아의 살인마 가라비토는 나르시시스트다. 그는 저자와의 면회에서 자신이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희생자를 사로잡는 데 폭력은 쓰지 않았다고 강조하며 되도록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 노력한다. 가톨릭 신부와의 대화가 자백의 계기가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자에 따르면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위대하고 영리하고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포장하지만 내면에는 열패감이 있다. 비난을 받으면 폭력적으로 변한다. 성공 출세 섹스 등에 집착하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공감과 감정 이입 능력이 결여돼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일은 지옥에 있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했다. 괴물은 어떻게 태어나는지, 그 내면에 무엇이 담겨있는가를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꽤 흥미롭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신은 나를 이해한다고 했다#마르크 베네케#리디아 베네케#살인마#사이코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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