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 ‘국내용’ 꼬리표 떼어낸 오혜리 “발 뻗고 푹 잘 것 같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1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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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인자라는 소리는 안듣겠죠?”

오혜리(28·춘천시청)는 20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태권도 여자 67㎏급에서 금메달을 딴 뒤 2인자 이미지에서 벗어난 것을 무엇보다 기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발 뻗고 푹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리우로 떠나기 전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누구에게 가장 미안할 것 같냐”는 질문에 “그럴 일은 없다. 꼭 금메달을 걸고 1인자가 돼 돌아올 것”이라고 했던 오혜리다.

오혜리에게는 그동안 ‘2인자’, ‘국내용’이라는 꼬리표가 줄기차게 따라다녔다. 오혜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년 선배 황경선에 밀려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보름가량 앞두고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해 역시 출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당시 오혜리는 24세. 4년 뒤 리우 올림픽을 생각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다.

태권도에서 여자 선수의 전성기는 대개 22~24세다. 리우 올림픽 태권도 여자 4개 체급에서 메달을 딴 16명을 봐도 1980년대생은 오혜리와 67㎏ 초과급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멕시코의 마리아 델 로사리오 에스피노자(29) 뿐이다. 오혜리가 결승전에서 꺾은 체급 랭킹 1위인 프랑스의 하비 니아르도 전성기 나이인 23세다. 태권도 여자 대표팀 코치를 맡은 박계희 춘천시청 감독은 “(오)혜리 나이에도 기량을 유지하면서 올림픽에 출전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했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부상을 당했을 때 오혜리가 리우 올림픽에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태권도인은 거의 없었다. 오혜리는 국제종합대회 국가대표 선발전과는 유독 인연이 없었다. 리우 올림픽 전까지는 올림픽은커녕 아시아경기에도 나간 적이 없다.
오혜리는 실패와 부상을 당할 때마다 짜증도 많이 내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울고불고 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나 싶더라구요. 마음을 편하게 먹고 딱 한 번만 더 도전해 보기로 했죠.”

오혜리는 지난해 12월 기준 세계태권도연맹(WTF)의 올림픽 체급 랭킹 6위 안에 들면서 2전 3기 끝에 올림픽 무대를 밟는데 성공했다. 오혜리는 “리우 올림픽 전까지는 내 차례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차근차근 준비를 잘 했기 때문에 나한테 주어진 기회를 잡은 것 같다”고 말했다.

리우 올림픽 금메달로 그는 ‘국내용 선수’라는 꼬리표도 떼어냈다.

오혜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 따라 동네 태권도장을 가면서 태권도와 첫 인연을 맺었다. 어릴 때부터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태권도에 소질을 보인 오혜리는 중학교 때부터 선수로 나섰고, 중3 때부터 전국 대회에서 빠지지 않고 입상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전국체육대회에는 대학부와 일반부로 출전해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적수가 없었다. 하지만 메이저 국제대회에서의 우승은 지난해 첼랴빈스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이 처음이었다.

2전 3기의 도전 끝에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2인자’, ‘국내용’의 설움을 한방에 날린 오혜리는 서른이 되는 2년 뒤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까지 계속 뛰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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