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대입논술 A∼Z]<6>논거 마련

입력 2006-05-09 03:00수정 2009-10-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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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제를 파악하여 논지를 설정하고 나면, 다음 일은 논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논거란 결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말합니다. ‘다음’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제로는 논지를 설정하는 것과 논거를 마련하는 것은 동시에 해야 할 일입니다. 논거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그 논지를 지탱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내 주장이 옳다는 것을 정당화하여 남을 설득시키는 데에 논술의 목적이 있다면, 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은 논술의 생명력을 결정합니다. 설득력은 논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논술 답안을 채점할 때 가장 주목하는 것은 역시 논거가 제대로 제시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근거 제시가 필요한 맥락인데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주장만 강하게 내세울 경우, 논술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논거를 제시하는 듯 보이지만 논거의 내용이 검증되지 않았거나 결론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경우에는 논거를 제시하지 않은 셈입니다. 또 논거를 제시하였지만 제시문에서 이미 나온 내용에 거의 의존하고 있을 경우 배경 지식과 사고력이 부족한 학생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결정적인 잘못이야 절대로 범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이제 논거 제시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 명심해야 할 점을 세 가지만 추려 봅시다.

첫째, 논거를 마련할 때에는 양보다는 질로 승부해야 합니다. 논거의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설득력이 꼭 강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개를 가볍게 건드리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없습니다. 한 가지 논거라도 확실한 논거만 있으면 논증은 일단 성공하며, 핵심적인 논거 두세 개를 선택하여 각각을 심층적으로 논의하면 설득력은 강화됩니다. 그래서 논거를 마련하는 일은 영화 제작에서 배역을 결정하는 캐스팅 작업과 유사합니다. 우선 주연으로 확실한 배우를 선택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스타 시스템이 존립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스타 한 명이 준스타급 여러 명보다 관객 동원력이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스타 시스템이 영화에서는 부작용도 있지만 논술은 스타 시스템에 의존해야 합니다. 확실한 주연을 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논거를 마련할 때 양보다 질을 따져야 합니다.

둘째, 결론을 정당화하기에 가장 적절한 논거를 찾아야 합니다. 논거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적절성입니다. 제시한 바로 그 결론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좋은 논거이고 질 높은 논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논지를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는 논거인지 항상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한다’가 결론이라고 합시다. 이때 “지금 학교 건물은 너무 좁다, 또한 지금 건물은 안전성에도 문제가 있다”가 근거로 제시되면 어떨까요? 언뜻 보면 좋은 근거처럼 보이지만, 적절한 근거라고 만족하기에는 함량 미달입니다. 건물이 좁다는 것은 증축의 근거도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전성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수리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새 건물을 지어야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근거 역할을 전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적절한 결정적인 근거로 역할을 다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정적인 근거가 없이는 결론을 정당화하기 어렵습니다. 반론의 여지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논거를 마련할 때에는, 여기에서 다른 결론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인지 자문하면서 접근해야 결론을 제대로 뒷받침하는 논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셋째, 결론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논거를 찾아야 합니다. 특히 결론이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일 때에는 각각의 요소에 대하여 논거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에 신자유주의 논리를 도입하는 문제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부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합시다. 우선은 왜 도입에 찬성하는지에 대한 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되고, 왜 하필이면 부분적 도입을 주장하는지에 대한 논거도 제시해야 합니다. 만일 “부분적으로 도입하되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면, 앞의 논의에 덧붙여 시급한 도입에 대해서도 논거를 제시하여야 합니다.

적절하고 충분한 논거를 주연으로 발탁하는 뛰어난 캐스팅 전문가가 되어 봅시다.

박정하 성균관대 학부대학교수·EBS 논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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