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미국]꼭두각시 엘리자베스 돌?

  • 입력 1999년 8월 31일 18시 59분


미국은 진정으로 ‘여성 우선 ’(ladies first)의 나라인가? 바깥에서 보면 미국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엘리자베스 돌과 힐러리 클린턴이 남편인 밥 돌과 빌 클린턴보다 더 똑똑하다고 칭송되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두 여자 중 누가 더 훌륭한 대통령이 될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정치 분위기를 보면 미국 여성들이 완전한 남녀평등을 확보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 여성이 우선이기보다는 오히려 나중 취급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all men are created equal)라고 천명했다. 이 독립선언문에 ‘human’이 아닌 ‘men’을 씀으로써 ‘여성’(women)을 배제한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오직 남성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이성적 능력을 지닌 완전한 시민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그 후 도전받고 많이 약화되었지만 아직도 잔재한다. 바로 이런 사고방식이 여성의 참정권을 방해한 주요 요인이었다.

노예해방 이후 흑인 남성은 1870년 헌법 개정 때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은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1920년이 되어서야 비로서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미국은 어쩌면 여성 대통령을 갖는 마지막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 영국에는 벌써 마거릿 대처 총리가 있었다. 심지어 성차별이 만연한 필리핀 파키스탄 인도 인도네시아 등 후진국에서조차 여성들이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미국인들은 아직도 여성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최근 30대 전문가들 사이에 있었던 대화는 아주 전형적인 것이다. 이 대화는 엘리자베스가 정말 미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어 밥 돌이 ‘영부군(令夫君)’ (퍼스트 레이디가 아닌 퍼스트 젠틀맨)이 되면 미국을 배후에서 통치할 것이라는 농담으로 끝났다.

여성은 단지 남편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여성은 지도자가 아닌 추종자가 될 뿐이라는 견해는 널리 퍼져 있다. 이런 편견은 여성이 직장에서 직면하는 차별을 부분적으로 설명해 준다.

여성은 남성보다 승진하기가 더 어렵고 권위있는 직위에 배치되기도 더 어려우며 봉급도 적게 받는다. 노동관련 조사들은 여성이 같은 일을 하면서도 남성보다 여전히 수입이 적다는 것을 보여준다. 직장에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집에 가면 집안 일이 잔뜩 기다리고 있다. 집안 일은 여성의 일로 간주되고 있고 대부분의 미국 남성들은 아내와 집안 일을 분담하지도 않는다.

한 남편의 아내이자 미취학 아들을 둔 백인 여성 변호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녀는 여성이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다는 추측에 대해 ‘말 뿐’이라며 일축한다.

또한 미국이 ‘여성 우선’의 개념과 동격시되고 있다고 하자 실소를 한다. “그건 단순히 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성 우선’이라는 것은 데이트할 때 여성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은 언제나 남성 우선이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불이익은 바로 성차별주의”라고 그녀는 말했다.

여지연(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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