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의 영화이야기]감독의 아내들이여 파이팅!

  • 입력 2002년 1월 24일 17시 40분


‘피도 눈물도 없이’의 류승완 감독과 우리 영화사의 강혜정 실장은 부부다. 강실장은 나와 ‘투캅스3’로 4년전에 인연을 맺은 친구고, 류감독은 강실장의 적극 추천으로 함께 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한 영화사에서 두 사람이 일년을 넘게 일하고 있다.

‘피도…’가 한창 촬영 중일 때 류감독 얼굴이 안 좋길래 강실장에게 “남편 괜찮니?”라고 묻자 “모르겠어요. 요즘 말 안한지 꽤 됐어요” 라고 대답했다. 의아해서 “왜 말을 안하느냐”고 묻자 촬영할 때는 너무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해 눈치코치 다 봐야 한단다.

하지만 영화 촬영이 얼마나 감독의 혈을 짜내는 지 잘 아는 강실장은 그런 감독 남편을 이해하며 각자 잠만 자고 나온다고 한다. 감독의 직업 특성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그렇지, 다른 감독 부인들은 어떻게 일년 중 열달 이상을 그렇게 사나 싶다. 새삼 어느 인터뷰에서인가 임권택 감독의 부인이 ‘트로피만 있으면 뭐해요, 애들이 아빠 얼굴을 모르는데’라며 한탄했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그런데 감독이란 직업은 일로만 바쁘고 예민한 남편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촬영하다 보면 배우들과 친해지고, 배우중에는 당연히 여배우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의외로 감독 아내들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참 현명하다. 아무리 소문이 떠돌아도 그것을 절대 추궁하지 않는단다. 감독은 당연히 배우와 호흡이 맞아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소문 많은 동네에 헛소문도 나는 법, 그것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을 괴롭혀야 하겠느냐는 이야기다.

또 감독 남편의 모니터 역할도 톡톡히 하는 듯 하다. ‘와니와 준하’를 만든 김용균 감독의 부인은 모 영화주간지의 편집장인데 남편의 시나리오나 아이템이 별로일 때는 가차없이 ‘형편없다’고 일축해 버린다고 한다.

박찬욱감독의 부인은 조목조목 짚어가며 의견을 말하기도 하지만 결론은 절대 말하지 않는단다. 남편이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마음 씀씀이라는 것이다.

영화인 특히 제작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영화 감독의 아내들에게 머리숙여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좋은 영화 대표 greenpapya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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