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왜곡-선동에 더 취약해진 대중… 정보화 사회의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댓글부대(장강명·은행나무·2015년)

시계를 조금만 앞으로 돌려보자. 2012년 12월 11일 밤으로 말이다. 그때 서울 강남구의 한 오피스텔 문 앞에선 수많은 사람과 카메라 플래시가 뒤엉킨 채 방 안에 있는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론의 시선도 이 오피스텔로 집중됐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출발이었다.

이후 온·오프라인에서는 국정원이 정말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려 했는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대선은 그 와중에 치러졌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다. 사법기관 수사 등을 통해 국정원 직원이 인터넷에 정치적 목적을 위한 댓글을 작성한 게 의혹이 아닌 사실로 확인됐다.

작가는 “처음에는 의혹에 대해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가에 대한 믿음 때문이리라. 국민 상당수도 작가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당시 국정원 댓글 의혹을 믿지 못했던 이들이 내세운 근거는 또 있었다. ‘인터넷에 댓글을 다는 것으로 과연 여론 조작이 될까’라는 의문이다. 이에 대해선 아직까지 명확한 답은 없다. 하지만 소설 ‘댓글부대’에서 작가는 이 역시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실재하는 진실일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오피스텔에 진을 치고 앉아 ‘팀-알렙’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는 청년 3명이다. 이들은 진보성향 인터넷 커뮤니티를 댓글로 분열시켜 문을 닫게 만들고, 10대 청소년들을 선동하기도 한다. 분노와 증오, 허세 등 사람들을 흥분하게 하는 감정을 담은 그들의 말은 인터넷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소설 속에서 여론조작은 너무나 쉽게 이뤄진다. 소설에선 팀-알렙을 조종하는 배후세력도 보여준다. 이들은 팀-알렙을 통해 세상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나간다.

책을 읽고 나면 ‘어쩌면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었던 댓글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생긴다. 독자가 의심을 갖고 댓글을 보게 된다면 작가는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일을 다한 셈이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분노#왜곡#선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