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에게 말 걸기 20선]<19>민족주의와 고고학

  • 입력 2009년 7월 7일 02시 56분


◇민족주의와 고고학/시안 존스 지음/사회평론

《특정 유물이나 역사적 기념물에 정체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욕구, 특히 이를 만든 민족 집단이나 주민을 밝혀내려는 욕구는 고고학 연구의 중심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모든 고고학 자료는 특정 민족 집단에 소속된 것으로 설명돼 왔다. 영국에서는 브리튼족 로마인 색슨족 데인족 등이, 중부 유럽에서는 게르만계 유목민인 헤룰리족이나 킴브리족 등이 주로 언급됐다. 19세기에 들어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고고학 자료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는데 특히 고고학 자료의 국민적 또는 민족적 계보를 추적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계기가 됐다.》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 유물들

영국 맨체스터대 고고학과 교수인 저자는 오늘날 고고학의 이론적 쟁점 가운데 핵심으로 ‘민족 정체성의 문제’를 꼽았다. 즉 ‘고고학이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문제다.

저자는 민족주의 고고학의 전형으로 나치 독일 아래에서 고고학자들이 과거를 조작한 사례를 들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독일 학자 구스타프 코신나는 독일 고고학에서 민족적인 해석을 주도했다.

그는 게르만족의 선조 격인 아리아 인종의 우수성을 부각시켰다. 고고학적 차원에서 볼 때 아리아 인종은 새로운 지역으로 계속 무대를 넓혔고, 이를 통해 인류 역사 발전에 결정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독일 고고학계는 즉시 코신나를 비난하면서 인종차별주의적 색채를 띠었던 나치 시절 고고학 연구 풍토로부터 벗어나는 작업에 착수했다.

19세기 덴마크에선 고고학자들이 고대 분묘나 고인돌 같은 선사시대 기념물을 이용해 국가의 목가적 풍경을 구성하는 데 애썼고, 독일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식을 재건하는 데 앞장섰다.

고고학은 신생 국민국가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은 국가 수립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대 이스라엘이 고대 이스라엘 민족과 혈통적으로 직접 연결됐음을 강조하면서, 철기시대 고고학 자료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유대인 저항세력이 로마의 압제에 맞서 집단 자결한 현장인 마사다 유적을 민족의식 고양을 위해 중요한 장소로 부각했다.

민족주의 고고학은 식민주의 고고학, 제국주의 고고학 같은 다른 유형의 고고학을 낳았다. 짐바브웨 마스빙고 지역의 석조 유적은 제국주의 고고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마스빙고 지역에서 매우 정교하게 축조된 대형 석축 유적이 발견됐고, 일부 고고학자는 13∼15세기경 이 지역에 있었던 모노모타파 왕국이 건축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유적의 주체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19세기 유럽인들이 이 유적을 발견한 이래 아랍인 또는 로마인 같은 외래인이 이 지역에 와서 축조한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인들의 문명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담고 있는 주장이다.

고고학에 대한 이런 민족주의적 접근과 연구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우선 고고학적 증거만을 토대로 선사시대 주민들을 식별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또 많은 학자들은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과거 문화나 민족 집단의 관념적 규범에 접근하는 것은 힘들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고고학에는 항상 팽팽한 긴장이 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는 욕구와, 과거 사회를 통해 오늘날을 이해하려는 욕구 사이의 긴장이다”라고 말한다.

고고학과 민족주의를 연결한 이 책의 주제는 흥미롭다. 하지만 저자가 박사 학위 논문을 토대로 쓴 책이어서 비전공자가 읽기에는 다소 어렵다는 게 흠이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