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광현/복지-재경부 ‘담뱃값 싸움’

  • 입력 2003년 7월 22일 1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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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은행 조사 결과 담뱃값을 10% 올리면 담배 소비는 선진국에서는 4%, 개발도상국은 8% 줄어든다.”(보건복지부)

“1990년 이후에 담뱃값을 4번이나 올렸지만 금연 효과는 길어야 6개월밖에 안됐다.”(재정경제부)

담뱃값 인상을 둘러싸고 복지부와 재경부 관계가 심상치 않다. ‘정책 효과’에 대한 논쟁을 넘어 부처간 감정싸움 양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복지부 주장은 이렇다. 현재 갑당 150원인 건강부담금을 1000원 더 올리면 담뱃값이 비싸져 흡연자가 줄어든다는 것. 또 이를 통해 확보되는 3조8000억원으로 각종 복지사업을 할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고’라고 강조한다.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없으므로 여론도 복지부에 유리하다는 생각도 하는 것 같다.

재경부의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재경부 당국자는 “담뱃값이 1000원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75% 정도 더 오른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예상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4%이므로 담배 1개 품목이 전체 물가 상승률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셈이다.

물가 상승률은 그 다음해 노사간 임금협상의 기준은 물론 연금, 공사비, 최저임금 등을 정하는 데 활용된다. 쌀 수매가격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금도 건강부담금을 건강보험 적자 메우는 데 다 쓰면서 늘어난 돈을 극빈자 구제에 제대로 쓸 수 있느냐는 냉소적 반응도 나온다.

양쪽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쉽게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주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담뱃값을 둘러싼 논쟁이 이처럼 시끄러운 것은 논리의 타당성 때문이 아니라 설익은 정책추진 방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부처간 조율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아니면 말고’식으로 던져 놓고 여론의 추이를 보겠다는 태도가 문제를 키웠다는 것. 상당수 재경부 공무원들은 “복지부의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담뱃값을 못 올린다”며 불쾌해했다.

어떤 정책을 둘러싸고 부처간에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행정부라면 최소한 서로 이견(異見)을 조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담뱃값 인상 문제를 포함해 현 정부 출범 후 자주 보이는 정책혼선은 효율성의 측면에서 볼 때 도를 넘어선 느낌이 적지 않다.

토론도 좋고, 국민 여론을 떠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 부처간에 ‘감정싸움’만 되풀이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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