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엄마의 와우! 유럽체험]보신각 종소리와 젝트 한잔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5시 26분


독일 친구들이 보내온 카드를 보며, 무뚝뚝하지만 한결 같은 독일식 우정을 확인합니다. 올 연말도 그냥 가족과 함께 저녁 먹고, 대화하고, 산책하며 보낼 거라는 이야기. 정작 독일에 있을 때는 밋밋하게 느껴지던 독일인의 삶이건만, 한국이라는 끓는 냄비 속에 살고 있는 나우 엄마에게는 그 단조로움이 오히려 아름답게 보입니다.

작년 이맘때 독일 하노버에 살았습니다. 세상이 참 조용하더군요. 작은 모임들 초대장을 받으며 한해가 가고 있음을 실감케 할 정도로...

하노버 시청에 있는 나우 놀이방에서도 송년회가 있었어요. 교사와 부모,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케이크와 차를 나누는 시간. 모임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색종이와 낡은 헝겊들을 이용해서 교실을 장식하고, 부모님께 드릴 감사의 선물을 만듭니다.

이날은 꼬마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극의상을 입고 새해의 소원을 말하는데, 뭐든지 좋아요. 내년에는 우리 집에 초컬릿이 가득 찼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우리 아빠 엄마가 다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연까지...

소원을 발표한 아이들은, 촛불 앞에 있는 선물을 하나씩 가져갈 수 있지요. 엄마들이 하나씩 준비해 온 것으로, 무작위로 하나씩 뽑아 가는 겁니다. 엄마들이 선물을 준비할 때 지켜야 할 것은, 선물가격이 5마르크(3천원) 이내여야 한다는 점. 나우엄마도 고민하다가 5마르크 짜리 털장갑을 샀습니다. 아이들이 선물을 열 때마다 엄마들은 5마르크 안에서 그렇게 다양한 선물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합니다. 때로는 저걸 어디서 5마르크에 파느냐며 서로 세일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죠.

원장선생님의 스피치 시간. 올해 목공일을 하는 사샤 아빠가 놀이방에 의자 세 개를 선물해주었답니다. 모두 큰 박수를 보내고, 원장선생님이 사샤 엄마에게 장미꽃다발.... 이렇게 조용히 오밀조밀 한해를 마감하는 모임을 가지며 독일인들은 조용히 연말을 보냅니다.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곳은 거리의 카페. 보온병 만한 맥주 잔을 마주하며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젖히는 풍경이 정겹습니다. 신기한 점은, 대낮에도 음식에 맥주를 곁들이는 나라이면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을 볼 수가 없다는 겁니다. 이성이 감성을 지배하는 게르만족이기 때문일까요?

이렇게 점잖고 합리적인 독일인들이 이성을 잃고 불장난에 열을 올리는 날이 있으니, 바로 12월 31일입니다. 일년에 하루, 민간인들이 폭죽을 터뜨릴 수 있도록 허락된 날이지요. 밤 10시경부터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폭죽을 터뜨리기 시작하는데,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노부부까지 그 열기가 대단합니다. 독특한 장소에서 폭죽놀이를 즐기기 위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행동도 이날만은 용서되죠.

오페라 하우스 앞 광장은 수천 명의 하노버 사람들이 모여 새해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하는 장소. 나우네도 독어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는데, 순서대로 외우기도 힘든 독어 숫자를 거꾸로 세려니까 몹시 헛갈리더군요. 1월 1일 0시를 알리는 불꽃놀이와 함께 수백 개의 풍선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사람들은 저마다 따뜻한 포옹와 입맞춤 속에 새해 인사를 나눕니다.

우리가 보신각 종소리로 경건한 새해를 시작한다면, 독일인은 젝트(Sekt)라는 술로 새해를 시작해요. 젝트는 거품이 있는 화이트와인의 일종으로 샴페인 대용으로 쓰이는데, 고가인 샴페인에 비해 가격도 저렴해 실용적인 독일인들이 좋아합니다.

올해도 그들은 젝트와 폭죽 속에 새해를 맞이하겠군요. 우리도 보신각 종소리가 정해주는 나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짜 21세기는 2001년에 시작된다는데, 폭죽을 터뜨리기에는 썰렁한 연말. 소원성취라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겨울. '괜찮지?' 라는 의미심장한 인사들...

딸내미 나우는 세배 연습이 한창입니다. 고개를 숙여야 된다고 했건만, 여전히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언젠가는 나우도 완벽한 세배에 성공하겠죠. 하고 싶은데 안 되는 것 보다, 노력하면 되는 것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 2001년. 대망의 새해. 화이팅!

나우엄마(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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