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펜싱]첫메달 이상기 순간방심으로 무너져

  • 입력 2000년 9월 16일 22시 54분


16일 오후, 이상기(34·익산시청)는 펜싱 경기장 옆 텅빈 보조 경기장에서 긴장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남자 에페 4강전에서 세계 랭킹 1위인 파벨 콜로로코프(러시아)에게 2라운드까지 3―3 동점을 유지하다 3라운드에 흔들려 8―12로 무너진 여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펜싱은 3분 3회전을 치러 많은 점수를 따거나 먼저 15점을 따는 선수가 승리를 거두는 경기. 세계 1위라고는 하지만 콜로로코프와는 올해 두차례 격돌해 모두 승리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3,4위 결정전이 벌어지기 5분 전까지 굳은 표정으로 서성거리는 이상기의 등을 대표팀 김헌수 감독이 도닥거렸다.

“우리가 그동안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메달을 놓칠 리 없다. 메달을 못 따면 선수 책임이 아니라 내 책임이다. 너는 부담없이 경기에 나서기만 하면 된다.”

20여분 후. 이상기는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감싸안았다. 펜싱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따낸 감격에 이상기는 눈물을 글썽였다.

이상기는 3,4위전에서 스위스의 마르셀 피셔를 15―14, 극적으로 누르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14―11로 앞서던 이상기는 피셔에게 허무하게 내리 3점을 뺏겨 동점을 만들어주고 말았다. 14―14에서 두 선수는 동시에 상대를 찔러 득점 없이 다시 동점. 선전하고도 마지막에 무너진 준결승의 악몽이 되살아나려는 순간, 이상기는 힘차게 칼을 찔러들어갔고, 득점을 알리는 초록색 등이 켜졌다. 신문 방송의 인터뷰를 정신없이 마친 뒤 라커룸으로 돌아간 이상기는 맨 먼저 서울 집으로 전화를 돌렸다.

“아빠 경기를 보면서 응원하고 싶어서 하루종일 TV앞에 앉아있었어요.”

열 살 난 아들 준호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넘어오자 그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혔다.

<시드니〓주성원기자>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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