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경주 경마장 부지에서 신라 숯-토기가마 무더기로 쏟아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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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경주 손곡동 유적 발굴한 이상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

23일 경북 경주시 손곡동 유적에서 이상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이 가마터 발굴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64기의 숯가마와 토기가마가 무더기로 나왔다.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3일 경북 경주시 손곡동 유적에서 이상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이 가마터 발굴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64기의 숯가마와 토기가마가 무더기로 나왔다.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3일 경북 경주시 손곡동 유적. 경작 행위를 금지한다는 마사회 표지판 너머로 대나무와 억새가 수북이 자란 구릉이 보였다. 마치 거대한 가마처럼 완만한 경사였다. 주변은 온통 황량한 겨울 벌판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답사에 나선 이상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56)이 손가락으로 구릉을 가리켰다. “저기서 신라시대 숯가마와 토기가마가 무더기로 나왔습니다.”

 당초 경마장 용지였던 이곳은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가마터(요지·窯址)가 발견돼 2001년 국가사적으로 지정됐다. 이로써 1992년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던 경주 경마장 건설 계획은 취소됐고 유적은 보존됐다.

○ 미묘한 ‘흙색 변화’ 놓치지 않아


 1997년 8월 초 손곡동 발굴 현장. 경주 토박이로 현장 책임자였던 이상준이 꽃삽과 대칼을 잡았다. 지표로부터 30cm 아래서 노랗게 변색된 흙이 동그란 형태로 발견된 것. 그는 순간 굴뚝임을 직감했다. 통상 가마 내부 벽체는 불에 닿은 정도에 따라 회흑색→노란색→빨간색 순으로 색깔이 바뀐다. 발화가 일어나는 가마입구(화구·火口)는 회흑색이 나타나는 반면에 연기가 나가는 연도(煙道)나 굴뚝은 불에 직접 닿지 않아 노랗거나 붉게 변색되기 마련이다.

경북 경주시 손곡동 유적에서 발견된 ‘숯가마’(위 사진). 나무 장작을 넣는 측구가 길게 늘어서 있어 피리를 닮은 구조다. 근처 토기 폐기장에서는 동물 혹은 춤추는 사람 모양의 토우(아래 사진)들이 출토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경북 경주시 손곡동 유적에서 발견된 ‘숯가마’(위 사진). 나무 장작을 넣는 측구가 길게 늘어서 있어 피리를 닮은 구조다. 근처 토기 폐기장에서는 동물 혹은 춤추는 사람 모양의 토우(아래 사진)들이 출토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지하식 가마는 굴뚝과 화구의 위치를 정확히 잡아내는 게 관건이다. 자칫하면 굴뚝과 화구를 잇는 중간 몸체(요체·窯體)를 발굴 과정에서 훼손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는 굴뚝 크기와 형태를 감안해 2주에 걸쳐 주변 흙을 조심스레 파낸 끝에 검게 그을린 화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화구와 굴뚝을 중심으로 요체까지 신라 토기가마 1기의 전모를 드러내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이 가마(47호 토기가마)는 손곡동에서 발견된 47기의 토기가마 중 유일하게 땅 밑에 만들어졌다. 나머지는 반(半)지하식 가마들이다. 이상준은 “47호는 이례적으로 가마 지붕이 붕괴되지 않은 채 발굴돼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최고의 유구로 꼽았다.

 이 가마가 제공한 정보는 다양했다. 우선 가마 내부 온도가 높아도 바닥이 굳지 않고 무른 이유를 알게 됐다. 가마에 들어간 토기들의 수평을 맞추기 위해 뿌린 모래가 화염이 바닥에 닿는 걸 차단한 것. 또 토기들이 가마 안에서 서로 엉겨 붙는 걸 방지하기 위해 토기 받침을 넣은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 가마 변천사 종합전시장


 경주 손곡동 유적은 숯가마(탄요·炭窯)를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발굴 당시 전국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숯가마는 울산 검단리와 경주 천군동 등에서 발견된 4기뿐이었다. 이들은 토기가마와 달리 평평한 데다 내부에서 토기가 발견되지 않아 숯가마로 추정됐을 뿐 결정적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손곡동 숯가마 안에서 숯이 발견된 것이다.

 학계는 신라시대 손곡동에서 생산된 숯이 인근 경주 황성동 제철유적에 공급됐을 걸로 본다. 손곡동에서 발견된 숯은 백탄(白炭)으로, 흑탄(黑炭)에 비해 화력이 떨어지지만 연소 시간이 길어 제철작업에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손곡동에서는 숯가마와 토기가마뿐만 아니라 채토장, 공방, 토기 폐기장, 건조장, 도공 주거지 등이 한꺼번에 확인돼 고대 생산기술사 복원에 핵심 자료로 평가된다. 특히 폐기장에서 출토된 100여 점의 토우(土偶)가 눈길을 끈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죄수 토우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 표현돼 있다. 또 같은 얼굴에 동작만 다른 10여 점의 토우는 춤추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경주 노서동 고분에서 출토된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항아리(장경호)’에 달린 토우와 비슷한 것들이 손곡동에서 발견된 것도 주목된다. 이상준은 “토우장식항아리는 손곡동 가마에서 생산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격이 높은 기와건물터가 발견된 걸 봐도 이곳은 국가가 관리한 대규모 가마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곡동 토기가마는 5∼7세기에 운영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 200년에 걸친 시대별 토기가마 양식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일본 나가노 현에서 손곡동의 7세기 중반 토기가마와 유사한 게 발견됐다. 이상준은 “신라 장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토기 제작 기술을 전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경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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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곡동#경주#이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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